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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21. 여행자 숙소

 튀니지는 기억이 사무치는 나라다. 

 내 소매를 꽉 부여잡는 여인이 있어 다시 가야하는 땅이 됐다. 그녀를 ‘림(Rim)’이라 불렀다. 52세였고 많이 뚱뚱했다. 에어비엔비(airbnb) 숙소로 예약한 그녀 집은 4개월 동안 여행하며 잠든, 어느 곳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튀니지는 어디로 가나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나라다. 모든 도시가 바다 가까이 있다. 전통시장 역시 볼거리가 많다. 특히 프랑스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향수 판매점이 즐비하다. 프랑스에서 향수 제조 기술을 배운 전문가들이 튀니지로 돌아와 향수를 만들어 판다. 이들이 모방해서 만든 샤넬 향수는 진품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가격은 다섯 배 이상 싸다. 그것 때문에 튀니지 향수는 여행자를 홀린다. 내가 ‘림’에게 홀린 것처럼.    


 그녀는 ‘수스(Sousse)’에 산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Tunis)’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두 시간 내려가면 도착한다. ‘수스’는 튀니지에서 네 번째 큰 도시며 지중해를 안고 있는 조용한 곳이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림’ 집 주소를 보여줬다. 운전수는 자신이 없는 표정이다. ‘림’과 통화를 한 후 운전수는 그녀의 아파트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그녀 집은 1층이었고 넓고 깨끗했다. 숙소로 내놓은 방은 침대가 크고 TV 등 편의시설이 잘 돼있어 기분이 좋았다. 싼 가격으로 좋은 숙소를 만나는 것은 여행하는 즐거움이다. 방이 두 개인 작은 아파트였다. 남편이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어 안방을 숙소로 내 놓은 듯 했다.   

  

 거실에 노트북이 있어 사용할 수 있냐고 어렵게 부탁했다. 그런데 ‘림’은 쉽게 말한다.

 “내 집을 당신 집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말 한마디가 내 집에 온 듯 편안하게 했다. 첫날이라 음식을 만들어 먹기 귀찮았다. 시장 구경을 한 후 저녁 먹고 오려고 문을 나서는데 그녀가 나를 잡는다. 

 “오늘 저녁은 우리와 같이 먹어요.”

 무슨 일인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 집에 온 손님을 환영하고 싶어서요.” 

 현지인 숙소를 많이 이용했지만 주인이 식사를 초대하는 것은 이 집이 처음이었다.    

 

 ‘림’은 병원에서 X-ray 기사로 일한다. 월급으로 1,200디르함(14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아파트는 렌트했고 월세가 비싸 생활이 넉넉지 않다는 얘기를 하며 식사를 끝냈다. 그런데 낼 아침도 함께 먹자고 한다. 아니, 왜? 과잉 친절이 부담이 되어 귀찮기까지 했다. 다음날 아침 일부러 늦게 일어났다. 모두 나가고 없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아침을 해먹으려고 부엌에 갔더니 식탁에 내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나한테 받은 숙박비로 음식까지 제공한다면 절대로 남길 수 없다. 식사를 하던 중, 그녀가 써 놓은 메모가 접시 사이에 놓여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도 집에 와서 먹어요!”    

 

 이제는 이유 없는 친절이 걱정됐다. 그렇다고 성의를 맞대놓고 무시할 수 없고 음식 값을 따로 주기도 아깝다. 과일을 사들고 저녁 시간에 맞춰 집으로 왔다. 어제와 다른 튀니지 전통 음식을 가득 차려 놓았다. 하루가 더 예약된 상태라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여행자다.” “친절은 고맙지만 부담이 된다. 내 음식은 내가 만들어 먹고 싶다.” 

 그녀는 절대로 부담을 갖지 말라며 손사래 친다. 내가 미심쩍게 쳐다보자 그녀는 딱 잘라 말한다. 

 “당신한테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내 집에 오는 모든 여행자에게 하고 있다.”

 믿을 수 없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진심인 것 같았다. ‘림’은 아버지 얘기로 시작했다. 영어가 막힐 때 딸이 옆에서 도와줬다.   

 

 그녀 아버지는 1988년에 사망했다. 어머니는 6년이 지난 후 아버지를 따라갔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림’을 불렀다. 

  “여행자가 있어 우리는 아버지와 오래 살 수 있었다. 그들을 가족처럼 생각해라!”     


 아버지의 직업은 택시 운전수였다. 돈을 많이 벌기위해 장거리 운전만 했다. 주로 국경을 넘나드는 길을 다녔다. 하루는 ‘수스’에서 ‘리비아’까지 손님을 태우고 갔다. ‘리비아’는 하루를 꼬박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나라다.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은 밤이었다. 먼 길을 혼자 돌아오는 도중 졸다가 사고가 났다. 그의 차가 길에서 튕겨나가 길 아래에 뒤집어진 것이다. 밤길이라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의식은 멀쩡한데 몸이 망가져 꼼짝을 못했다. 누군가 발견해주기를 속수무책으로 기다렸다. 결국 그는 차안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는 죽지 않고 다음날 병원에서 깨어났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녀 아버지를 밤길을 걷는 여행자가 발견했다. 길 아래서 깜빡이는 차량 램프를 보고 내려가 뒤집힌 차문을 열었다. 그 여행자는 급히 경찰에 신고했다. 아버지는 앰뷸런스에 실려 여행자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여행자가 아버지를 살린 후, 그녀 어머니는 여행자가 집 앞을 지나면 불러들여 극진하게 대접했다. 여행자는 남편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다. 아버지의 형제다.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은혜를 그렇게 갚았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딸 ‘림’은 어머니처럼 살았다. 여행자를 환대하기 위해 여행자 숙소를 만들었다.  

 

 튀니지 여행은 우연히 마주치는 행복이었다. 그 행복이 내 것인지, ‘림’의 것인지도 모른 체. 나는 그녀 집에 예정보다 이틀을 더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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