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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19. 미칠 수 있는 행복

‘산티아고 순례길’은 미친 사람만이 마지막까지 길 위에 있다.

 

 프랑스 국경 ‘피레내’ 산맥을 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먼 길을 요르단에서 다친 발목으로 걷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길에 미쳐 있었다. 이 길에서는 당연 내가 최고로 미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미친 순례자가 있어 미칠 것 같았다. 


 하루 60km를 걸었다는 핀란드에서 온 산골 소녀 ‘에밀리아’. 처음 그녀가 방에 들어와 앞 침대에 배낭을 털썩 벗어 놓을 때 남자 인줄 알았다. 짧은 머리에 차돌 같은 몸매. 그녀는 힘들지도 않는지 휴대폰에 있는 오로라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사는 집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하늘을 녹색 빛으로 가로지르는 오로라보다 나는 하루 60km를 걸은 그녀가 더 신기했다. 


 ‘스티븐’, 그는 영하의 기온에 텐트에서 잠을 자며 베를린에서부터 109일째 걷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1만 유로를 만들어줘서 그 돈으로 여행 중이라고 한다. 수첩엔 그가 걸어온 하루하루 일정이 빼곡했다. 이제까지 방에서 잠 잔 날은 이틀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수염이 목까지 내려와 흔들렸다. 아마 이정도 돈이면 그는 2년은 거뜬히 길 위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루 60키로 걷기와 추운 날 길에서 잠자는 일은 미쳐도 나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미침에도 장르가 있듯이, 극한의 에너지를 쏟는 그들의 미침과 나의 미침은 다르다. 

 ‘이 길에선 포도를 한 알씩 따먹는 것이 아니다.’ 

 ‘송이 째 들고 한 움큼 베어 무는 것이다.’ 

 수확하지 못한 길가의 포도를 내 것인 양 베물며 먼 길을 걸었다. 온종일 포도만 먹으며 해가 질 때까지 걷기도 했다. 늦가을 포도는 수분이 빠져 쭈그러지긴 했지만 당도는 절정에 있었다.


 포도가 끝난 시즌부터는 철지난 천연 겨울 사과가 나를 유혹 했다. 길가 집 마당에 사과나무가 보이면 주인이 있건 없건 들어가 내 것 인양 따먹고 나온다. 길을 걸을 때 사과는 갈증을 해소 하는 최고 과일이다. 한입 베물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상큼한 과즙이 지친 몸을 적신다. 도보 여행자에게 길가에 매달린 사과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오늘 사과는 나를 미치게 했다. 산길에서 마을로 길이 이어지면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사과나무다. 과실수는 꼭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자란다. 비가 추적거렸지만 집 마당에 있는 사과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겨울비에 살짝 언 감귤 빛 사과였다. 대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어 배낭을 내려놓고 누군가 집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순례길을 걷는 목마른 여행자를 타박하는 사람은 없다. 언덕에서 한 할머니가 내려오고 있어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 집입니까?”

 “씨[yes]……?” 

 “저 사과 때문에……하하.” 


 사과를 따서 배낭에 넣고 어처구니없어 웃는 할머니랑 사진 찍고 마을을 떠났다. 내 배낭이 길가 농작물 때문에 늘 12kg이 넘는다. 정말 무거워 미친다.  

 더 미쳐볼 시간도 이젠 없다. 며칠 후면 산티아고에 도착 한다. 45일을 미치면서 걸었다. 남들은 30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나는 최대한 오래 미치고 싶어 하루 걷는 분량을 줄이고 줄였다. 패드 병 물을 아껴먹듯 800km 길을 조금씩 아껴왔으나 이젠 더 이상 남길 길이 없다. 잠잘 ‘알베르게(Albergue)’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11키로만 걷고 값싼 ‘알베르게’에 체크인 했다. 요즘 비가 자주 내리는 시즌이지만 난 아예 쓸 만한 우비도 없다. 비가 오는 날은 걷지 않을 셈이었다. 한참 걷기 좋은 이른 오후에 알베르게에 등록한 미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습관적으로 히터가 있는 쪽 한적한 침대 앞에 배낭을 풀었다. 옷을 말릴 수 있는 히터 상단을 선점하기 위해 마른 수건을 얹어두고 과일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오늘 막 떠난 순례자가 남기고 간 음식을 확인해 둔다. 그래야만 저녁 식사 때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다른 순례객이 잠시 놓아둔 음식을 기부한 것 인줄 알고 무심코 먹은 적이 있어 항상 조심한다. 순례객을 위해 음식을 남기고 떠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남에게 줄만큼 남는 음식도 없었다.

 ‘배낭에 음식을 넣고 하루 종일 걸었는데 그걸 어떻게 남한테 주겠는가?’

 결국 음식 한번 기부하지 못하고 얻어먹기만 하면서 걸어온 길이 끝나간다. 내일이면 스페인 북서쪽 끝 ‘산티아고’에 입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떠난 지 3년이 넘었다. 가을과 초겨울을 산티아고 길 위에 통째로 있었다. 하루 2만원으로 살았지만 갈색 머리카락이 눈부신 미친 사람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았다. 길가에 쓰러진 나무와 고인 빗물에 담긴 낙엽 빛깔이 언뜻 좋았다. 산자락에 띄엄띄엄 놓인 농가엔 이따금 사람이 지나가고, 개울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에서 해가 떴고 길에서 해가 졌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열정이 차디찬 침대위에서 침묵하기도 했던 길이였다. 지병으로 상시 복용해야 하는 약 봉투가 자꾸 가벼워지는 것은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적 신념도 없이 마을 마다 있는 성당에 수없이 들어갔다. 모자를 벗고 의자에 앉아 땀을 식혔고, 성모상 앞에서 눈을 감아보기도 했다. 모래시계가 줄어들 듯 산티아고 길은 내가 걷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줄었다. 산을 내려가는 휘어진 황톳길 끝은 순례객과 함께 어둠으로 흩어졌다. 길 위에서 똥을 누고 빵을 깨물며, 비닐봉지와 양말을 배낭에 매달고 거지같이 걸은 산티아고 길.   

  

 그 길 위에서 온전히 미칠 수 있는 나는 행복해서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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