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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Nov 16. 2019

선물

한국 사람들보다 요르단 사람들이 선물 주기를 더 좋아한다. 난 그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받은 선물이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것이면 더없이 기쁘나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남에게 주는 물건만 선물이 아니라 다른 것 또한 선물이 될 수 있다. 나도 받은 만큼 선물을 한 것 같다. 문제는 내가 그들한테 받은 선물이 쓸모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곧장 돌아서지 않으면 고생한다.’    

 

 처음 ‘마무드’ 집에서 호기를 부렸다. 요르단 문화를 체험하고픈 인식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전통 음식 ‘만샤프’ 때문이다. ‘만샤프’는 요르단 사람들이 자랑하는 음식이며, 친한 손님이 올 때 내놓는 풍습이다. 문제는 전통에 따라 그 음식을 맨손으로 먹어줘야 “당신은 진정한 친구다.”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현지인과 친해지려고 나는 처음부터 맨손으로 먹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잘못 시작한 맨손 식사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식성이 좋다고 아무것이나 잘 먹는 것은 아니다. 난 비위가 약하다. 아니, 비위가 사나운 편이다. 4년 전 라오스 ‘방비엥(Vang Vieng)’에서 있었던 일이다.  

   

 운 나쁜 하루였다!

 개구리만 아니어도 나는 ‘씨학’ 집에서 하루 이틀 정도는 머물고 떠났을 것이다. 저녁 먹고 자고 가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씨학’ 집을 도망쳤다. 무슨 문제가 생긴 듯. 벌떡 일어나 배낭을 메는 내 모습을 보고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원주민과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을 좋아한다. 스스로 현지인 집을 나온 것은 너무 아쉬웠다.    


 ‘씨학’은 그때 우연히 현지에서 사귄 라오스 친구다. 그는 한 살 된 딸과 아내 ‘쓰드앙’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길가 외딴 집에 살고 있었다. 야자수 잎을 엮어서 만든 그의 집은 여행객들이 탄 오토바이와 툭툭이(오토바이 뒤에 좌석을 달아놓은 교통수단)가 지나다니며 일으키는 먼지가 정통으로 들어왔다.


 그 집에 있는 것은 내가 가지고 다니는 배낭 속 물건보다 적은 듯 했다. 그들이 가진 돈은 내가 여행 중 쓰고 남은 돈보다 적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과 둘러앉자 밥과 파파야로 만든 나물무침을 집어 먹으며 나는 벽에 걸린 투망을 봤다. ‘씨학’은 얼른 구석에 매달아 놓은 투망을 가져왔다. 식사를 끝낸 후, 나와 ‘그의 친구 ‘압낄라’ 셋이서 들판을 가로질러 석회암 바위 밑을 흐르는 계곡으로 갔다.   

 

 큰 고기가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주로 20센티 미만의 메기들이 물밑을 노닐었다. 두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물속에서 버티기가 힘든지, 몸을 떨면서 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고기가 가득 든 소쿠리와 투망을 메고 들판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는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를 열고 잡아온 고기를 확인한 후 저녁을 준비했다. 우리는 내가 사온 맥주를 마시며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씨학’은 아내가 소쿠리에 있는 고기를 요리해서 저녁을 차려올 테니 같이 먹고, 여기서 자고 가라고 수화를 섞어 말했다. 


 “그래, 나도 여기서 자고 가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숙박비를 주겠다는 뜻을 내 비쳤다. ‘씨학’은 기분이 좋아서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며 잔을 나한테 내 밀었다. 나는 오늘 밤이 기대됐다. 잔을 비우고 우리가 잡은 고기가 어떤 종류인가 궁금해 소쿠리를 열었다. 소쿠리 안엔 메기와 민물 게가 있었다. 순간 흠칫했다. 그 사이에 검고 큰 개구리 몇 마리가 꿈틀거렸다.     


 ‘안 돼!’ 

 ‘개구리는 먹을 수 없어!’       


 ‘씨학’은 손님인 내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다. 난 그 선물이 징그러워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받는 이런 선물은 주고받는 모두를 당황케 한다. 지금 내가 사는 요르단에서도 정성이 가득한 선물을 나는 심하게 거부한 적이 있었다.     


 홈스테이 했던 집 주인 ‘마무드’는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내게 전화했다. 코이카 신규 단원이 그의 집에 첫 숙박할 때나, 친척 모임이 있을 때 나를 불렀다. 현지인과 만남을 유독 좋아하는 나는 불러줄 때마다 달려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무드’가 전화를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그것 역시 그가 나한테 주는 선물 때문이었다.    


 개구리 요리에 도망치듯, 맨손으로 소스에 젖은 밥을 손가락으로 버무려 집어 먹는 것은 고역이다. 초대 받고 안 먹을 수도 없다.

 큰 쟁반 위에 10인분쯤 되는 음식을 가득 채워 가져온다. 증기로 찐 쌀밥위에 양고기가 수북하다. 우선 남자들이 먼저 먹는다. 소매를 걷고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하고선, 양념이 된 소스를 밥 위에 뿌린다.


 ‘개인 그릇에 담아서 각자 먹으면 좋을 텐데.’ 

 그냥 먹는다. 수프에 젖은 밥을 손으로 집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비위 상하는데 같이 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손 안댄 쪽 밥만 골라 집어먹을 수 없고, 양고기만 들고 뜯을 수도 없다. 양고기와 밥을 적당한 비율로 남겨둬야 여자들이 나중에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아서 되는 일이 아니다. 상한 비위를 달래며 그들과 함께 맨손으로 ‘만샤프’를 먹은 일은 참으로 고통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번 비위가 뒤틀리면 그 음식을 피하게 된다. 현지 문화체험이고 뭐고 ‘마무드’가 밥 먹으로 오라고 하면 나는 가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요르단에서 가장 맛있는 전통 음식을 선물했다. 난 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싫다며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그들이 주는 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그들만큼 나도 현지인에게 선물을 줬다. 현지인을 내 집에 몇 번 초대 한 것이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내가 아껴놓은 한국 음식을 선물했다. 전통 음식인 김치와 비빔밥, 라면, 국수 등을 대접했다. 특히 라면은 두 끼 식사를 해결해 줄만큼 요르단에서 귀하다. 남은 국물을 다음 식사 때 밥을 말아 먹으면 훌륭하다. 그래서 아끼고 아낀 음식이다.


 내가 맛있어 하는 음식이기에 당연 현지인도 좋아할 것이다. 그들이 사용할 줄도 모르는 젓가락을 쥐어주고 맛있게 먹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자신 있게 차려 놓았다.


 칭찬 일색이다.

 “한국 음식 정말 맛있어요!” 

 감탄을 하면서도 그들은 아까운 음식을 많이 남겼다.    

 혹시,

 ‘그들도 내 선물을 받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가슴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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