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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9. 2019

8. 먹고 사는 일

   

  ‘새들은 안녕한가?’     


 퇴근길에 듣는 새소리는 외로움이 묻어 있다. 외롭다 못해 애틋하다. 깃들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방안에서 새 소리가 들리면 창문을 열고 새를 찾는다. 집에서 새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작은 새들이 올리브나무 밑에서 푸득 거린다. 물기 없는 땅에서 견디는 나무들은 모두 잎이 두껍다. 올리브나무 잎처럼 단단하고 투박하다. 이런 잎에는 벌레가 자생할 수 없을 것이다.    


 요르단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무색하게 하는 땅이다. 해외봉사단원으로 요르단에 파견되어 2년이 지날 즈음 새의 존재가 궁금했고 신기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새 이름을 현지인한테 물으면 다들 모른다며 고개를 젓는다. 요르단 사람들은 새 종류를 정말 모른다. 아는 것은 그저 비둘기나 독수리 정도. 그 외에는 모두 ‘아쓰푸르(새)’라고만 한다. 물고기도 종류 없이 ‘싸마크(물고기)’, 나무도 그냥 ‘세자라(나무)’라고 하지 이름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 요르단에서 흔치 않은 귀한 것들이라 그냥 뭉뚱그려 말하는 것 같다. 아랍어를 공부할 때 이것이 의문이었지만, 외우기는 편했다.  

  

 아랍어 과외 선생 ‘라잔’한테 새들의 안부를 물은 적 있다. 

 “요르단에 먹을 것이 없을 텐데 새들은 어떻게 살까?” 

 이곳 새들은 벌레 없이도 살 수 있단다. 곡식류와 빵부스러기를 먹으면 된다고 말한다. 학원 앞 담장 위에 빵이 놓여 있는 걸 많이 봤다. 사람들은 새들을 위해 먹다 남은 빵을 밖으로 내둔다.

 ‘벌레 없이 빵부스러기만 먹고 사는 새들은 안녕할까?’ 

 문득, 나도 새처럼 요르단에서 먹고 사는 일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근무처인 문화부에서 12시가 되면 휴대폰이 울린다. 현지인 친구가 식사하러 오라는 것이다. 요르단의 공공기관 근무시간은 8시부터 오후3시까지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고 배고프면 알아서 먹으면 된다. 난 출근 전, 집에서 3시까지 견딜 수 있는 음식을 이미 채우고 출근하기에 현지인과 식사하는 시간은 부담스럽다. 딱딱한 빵과 설탕이 잔뜩 들어간 샤이(전통 차)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샤이 한잔에 설탕 4스푼 넣는다. 샤이는 설탕을 넣지 말라고 주문하면 되는데 빵은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 생 밀가루 맛이 풀풀 나는 딱딱한 빵을 꾸역꾸역 씹으면 독약을 먹는 듯하다. 호떡 2배 정도 크기의 빵을 반쯤만 먹고 차를 마신다. 친구는 “맛있는 빵을 왜 조금 먹느냐?”며 자꾸만 권한다. 미칠 지경이다.  


 요르단은 빵이 주식이다. 2년 정도 있으면 빵에 지친다. 비닐봉지에 든 빵은 어디서나 살 수 있다. 전 국민이 매일 먹을 수 있는 빵이 공급되는 것이 놀랍다.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1,700원이면 빵 10장을 산다. 이것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 한국의 쌀값처럼 요르단 정부는 밀가루 값을 엄격히 통제한다. 먹고 살기 힘들면 폭동이 일어날 거고 장기집권 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생필품은 싸다. 소고기와 과일 값은 한국의 1/4 밖에 되지 않는다. 한 달 월급 40~50만원으로 7식구(요르단 평균 가족 수)가 살 수 있는 이유다.      

 요르단 육류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가 주류다. 나는 처음 소고기부터 먹기 시작했다. 스테이크용으로 두껍게 잘린 먹음직한 소고기를 사지 않고 마트에서 나올 수 없었다. 오천 원이면 혼자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한국에서 비싸게 사 먹었기에 먹은 만큼 남는다는 생각에 몇 달 간 소고기만 줄곧 먹었다. 닭고기도 싸지만 소고기와 같은 가격이라 이왕이면 소고기였다. 소고기가 물리면 양고기를 먹었다. 양고기는 요르단 사람들이 선호하는 고기라 소고기 보다는 좀 비싸다. 양고기의 독특한 노린내 제거가 귀찮아 다시 소고기로 넘어 온다.    

 3개월이면 고기에 질리고, 6개월이면 내 몸이 요르단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이것이 몸으로 들어오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엄청 올라갈 것 같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약을 상시 복용하고 있어 맘 편히 요르단 음식은 먹을 수가 없었다. 외출해도 음식은 사먹지 않고 집에 와서 한국 음식으로 때웠다. 차라리 라면이 요르단 빵보다 건강에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요르단에서 먹고 사는 일이 힘들 때 쯤, 한국 음식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잘 먹는 체질이었는데, 나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현지인 친구들과 어울려 일을 할 땐 도리 없이 빵으로 때워야 했다. 그들과 현지 음식을 먹을 때 고추 가루에 버무린 참기름 냄새가 폴폴 나는 통통한 콩나물이 그립다. 순두부가 들어간 바지락 뚝배기 된장찌개도 눈에 삼삼하다. 체내에 많은 수분을 채우는 한국 음식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요르단에서 수없이 했다. 


 내가 물기 가득한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며 딱딱한 빵을 먹고 사는 것처럼, 요르단 새들은 벌레 없이 빵만으로 견딘다.    

 

 물가가 싼 나라에서 외식도 안하니 생활비는 늘 남았다. 외출해서 배가 고플 때 ‘무엇을 사먹을까?’ 마음속으로 상상 해본다. 결국 허기를 달래며 택시 타고 집으로 오곤 했다. 요르단에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배만 고프듯, 일찍 집을 나와 밖에서 오래있는 것이 나는 힘들었다. 내 주머니에 돈이 넉넉해도 사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 땅이 요르단이다.    

 

 사람이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라지만 이곳에서 내 몸은 변했다. 아니 원래 내가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요르단이 비가오지 않고 태양이 뜨거워봐야 얼마나 뜨겁겠는가? 아랍어가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람은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외로움도 슬픔도 결국 ‘먹고 사는 일’ 다음 일이다.   

  

 ‘나는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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