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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9. 2019

10. 아 쓰 마

 ‘그 아이가 와야 한다.’

 오늘 오지 않으면 만날 방법이 없다. 봉사활동의 설렘 보다 그 아이가 오늘 행사에 와야 하는 이유가 더 컸다. 오늘 못 보면 요르단을 떠날 때까지 만나지 못할 것이다.   

  

 겨울부터 기획했다. 5개월은 걸린 것 같다. 해외봉사 단원으로 요르단에 파견되어 ‘시네마천국’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활동이다. 영화를 보지 못한 아이들을 찾아 오지로 다닌 지 두해 째다. 가장 많은 예산과 정성을 쏟아 준비한 프로그램을 들고 우리 팀은 사해(Dead Sea) 끝 마을 ‘고르샤피(Ghor Safi)’로 떠났다. 25인승 버스에 아이들에게 줄 선물과 시네마 활동 장비를 가득 싣고, 팀원 8명과 사해 길을 따라 내려갔다. 햇빛에 번뜩이는 푸른 사해는 산허리를 감돌며 굽이굽이 잠겨있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두 시간을 달리면 소금 공장이 있는 사해 끝에 도착한다. 그곳엔 인구 6만 명의 마을 ‘고르샤피’가 있다. ‘고르’(Ghor)'는 아랍어로 ‘가라앉아 있다’는 뜻이다. 마을이 사해 수면보다 낮아 바람이 없어 기온이 높다. 그래서 요르단에서 가장 뜨거운 마을이 되었다. 여름철 50도 기온엔 주민들이 놀라지도 않는다. 


 뜨거운 여름보다 따뜻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요르단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온 듯 흑인들이 많은 가난한 땅. 이 곳으로 시네마천국 팀은 땀을 쏟으며 들어왔다.     

 ‘시네마천국’이라고 쓴 현수막과 아이들 사진을 벽에 붙이고 풍선펌프로 수백 개 풍선을 부풀렸다. 금세 교실은 사진과 풍선으로 꽉 찼다. 교실 바닥에 앉은 100여명 아이들이 똑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 아이들 눈을 하나씩 헤아리며 만나야 하는 일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찾았다.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나는 허둥댔다. ‘왜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을까?’ ‘너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활동이 끝나기 전에는 꼭 와야 한다.’ 

 혹시나 해서 선생에게 이름 모르는 그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지금 교실에 있나요?” 

 선생은 나를 교실 한 가운데로 데리고 갔다. 그 아이는 친구들과 섞여 있었다. 나는 아이 앞에 앉아 이름을 물었다. 무릎을 세워 내 귀에 속삭였다.

 “아쓰마!”

 아랍어 이름은 적어 두지 않으면 절대 기억할 수 없는 난, 그 아이 이름은 적지 않았다.     


 ‘아쓰마’를 만난 것은 정확히 11일 전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현지를 답사했다. 미리 아이들과 친해져야하고, 행사 당일 필요한 영상을 담아오기 위해서다. ‘고르샤피’ 센터 선생들과 ‘시네마천국’ 팀은 등교 버스를 타고 아이들을 태우려고 함께 떠났다. 들판을 돌고 돌아 시리아에서 넘어와 농사로 아이들을 키우는 농가에 도착했다. 버스가 경적을 여러 번 울렸다. 아이들이 집에서 책가방도 없이 달려 나왔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숨차게 뛰어오는 아이들 속에 ‘아쓰마’가 있었다. 작은 여자아이가 들판 끝에서 뛰어왔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붉은색 멜빵치마를 입고, 머리에 뭔가를 인 채 등교 버스에 헐떡이며 올라왔다. 아이 몸무게만큼 커다란 비닐자루였다. 그 속엔 아이 팔뚝만한 옥수수가 가득했다. ‘왜 이것을 학교에 가져올까?’ 궁금해 하는 내게 선생이 귀띔해 준다. 

 “아이 엄마가 수업료 대신에 보내는 거예요!”    


 ‘옥수수 소녀’는 낯선 외국인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우리 팀과 아이들은 춤추고 노래했다. 나는 그 아이 앞에 가서 카메라를 열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흘러내린 채 여자 아이는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었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본 그 아이는, 지금 막 지나쳐 온 들판에서 자라는 붉은 토마토였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을 피자를 아이들에게 가져가자!’

 ‘아쓰마’ 때문에 이번에 새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암만’으로 돌아와 센터 장에게 전화해서 150명분의 피자를 주문해 달라고 했다. 수 만 명이 거주하는 ‘고르샤피’에는 피자를 파는 가게가 한 곳도 없었다. 치킨으로 메뉴를 바꿔야 했다. 행사 당일 치킨을 배달시켜 아이들이 낯선 외국인과 얘기하며 음식을 함께 먹는 프로젝트였다.   

 

 행사는 1,2부로 나누어 진행했다. 1부는 교실에서 센터 아동 100여명이 대상이었고, 2부는 야외에서 마을 전체 아동을 대상으로 했다. 교실 활동은 주로 게임이나 그림그리기 등을 봉사자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인과 처음 수업해보는 아이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마냥 즐거워했다. 1부 행사를 마치고 좁은 복도에 앉아 막 배달해온 치킨을 먹고 있는 ‘아쓰마’ 앞을 나는 자주 지나다녔다.    


 ‘시네마 천국’을 이끌면서 아이들에게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내 임기를 이어간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번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해 예산을 아끼지 않았다. 애정을 쏟아 만든 우리 프로그램이 ‘고르샤피’ 아이들에게 깊숙이 흡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뜨거운 땅에서도 힘들지 않을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완성도가 높았다. 요르단에 와서 시행한 여덟 번 행사 중, 처음으로 완전한 프로그램을 펼쳤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아홉시 ‘암만’을 떠난 후, 밤 아홉시에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다. 우리는 쓰러진 채 ‘암만’으로 돌아왔다. 사해를 따라 휘어진 밤길에는 어둠이 흩어져 내렸다. 차는 사해 언덕에 매달려 자라는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쳤고, 바다 건너 팔레스타인 마을 불빛은 사해 수면을 적셨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1부 행사는 잘 끝났지만 2부 행사가 문제였다. 야간에 영화를 보여준 행사가 돌아오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눈[雪]을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눈으로 얼어붙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과 얼음으로 꽁꽁 언 이야기를 뜨거운 ‘고르샤피’ 마을에 풀어놓으려고 했었다. 나는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Frozen)’을 적당한 분량으로 편집했다. 한 시간이 넘으면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해진다. 영화 러닝 타임 40분, 답사 가서 미리 찍어둔 아이들 영상 20분을 합쳐 한 시간 분량으로 만들었다. 일주일동안 편집에 매달렸다.    


 한 번도 영화를 보지 못한 아이들은 센터 앞마당을 빼곡 채웠다. 우리 팀은 부채춤, 사물놀이, 난타를 공연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바람 한 점 없는 마을은 어두워 졌고, 아이들 숨소리도 멎었다. 나는 프로젝터 커버를 열고 노트북에 깔린 아동영상 파일을 클릭했다. 빔 프로젝트 빛이 어두운 마을로 화살처럼 쏟아져 나갔다. 센터에 세운 2층 높이 야외 스크린에 낯익은 친구 얼굴이 보이자 동네 아이들은 와~와! 하며 손뼉을 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쓰마’를 찾았다. 옥수수자루를 통근버스에 내려놓고 땀을 닦으며 우리와 함께 노래 부르면서 센터까지 오는 ‘아쓰마’가 영상의 주인공이었다.    

 200명 아이들이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내 옆에 있었지만, 등교 버스가 가지 않아 야간 행사에 올 수 없었던 그 아이. 버스 경적을 듣고 들판 끝에서 달음박질쳐 오던 붉은 토마토 같았던 아이. 


 ‘아쓰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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