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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Nov 16. 2019

‘방비엥!’ ‘방비엥!’

라오스 밤은 돌아서면 쏟아지는 눈물처럼 갑자기 온다.

 북쪽 방비엥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무서운 밤길이었다.  

  

 물 빛깔이 너무 편안한 메콩강에 손을 담그며 조그만 보트를 타고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들어왔다. 10일 후 캄보디아 내륙을 관통하여 흐르는 메콩강을 따라 다시 라오스로 넘어왔다. 흙빛 메콩강은 본디 흙에서 생겨난 물처럼 수 백 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와도 처음 빛깔 그대로 흙빛으로 흘렀다. 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든 강물이 흙빛이라고 알고 있듯, 오랫동안 메콩강을 보며 여행한 나는 흙빛 강물이 원래의 물 빛깔인양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메콩강으로 지는 노을이 아름답다는 기억 밖에 없는 라오스 중부도시 ‘타캑’을 지나 조그만 동네 ‘비엥캄’에 내렸다.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락사오’로 가기 위해서였다. 비엥캄에서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아 송태우를 타고 산간 지방으로 8번 도로를 따라 유칼립투스로 가득한 산길로 향했다. 신비로운 풍경이 이어질수록 바람은 더 차가워 졌고 나와 프랑스인은 1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송태우 짐칸에서 두꺼운 옷을 배낭에서 꺼내 입었다. 거친 운전사가 모는 트럭은 3시간을 달렸고, 산길 끝에는 따뜻하게 쉴 수 있을 ‘락사오’가 보였다.      

 입을 수 있는 옷을 다 껴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으나 한 시간마다 잠이 깰 정도로 방안 깊숙이 한기가 들어찼다. 여름 여행을 하고 있기에 두꺼운 옷이 없는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아침 일찍 버스 터미널에 가서 따뜻한 내륙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산악 지형을 벗어나자 다시 더워졌고 7시간에 걸쳐 비엔티안 남부 터미널에 도착했다. 


 예상과 달리 터미널 주변에는 마땅한 게스트 하우스가 없었다. 어차피 ‘방비엥’을 거쳐 라오스 북쪽 ‘루앙푸라방’까지 가려고 했기에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 가보기로 했다. 늦은 오후였기에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 ‘폰홍’이라는 곳으로 티켓 팅을 했다.     

     

 혼자 다녀야 현지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생기고 친해질 수 있기에 외국인들이 없는 곳으로 가려고 철저하게 로컬버스만 타고 다녔다. 그렇게 라오스 사람들과 옆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눠먹으며 라오스 사람처럼 한동안 다녔는데, 지금 내가 내린 이곳은 너무 시골이라 잘 곳이 없다. 


 여행을 떠나 온지 수 주일이 지났지만 어두워 질 때까지 숙소를 정하지 못한 일은 처음이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지도를 펴놓고 다른 곳으로 빨리 떠나기 위해 길가는 사람한테 방법을 물었지만 버스가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재워달라고 할 수 도 없어 혼자 배낭을 메고 게스트하우스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잘 곳은 있을 거야!’ 기대를 가지며 걷다보니 마을 끝까지 와 버렸다.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해는 언제 졌는지 주변 숲은 깜깜했다. 듬성듬성 서있는 집들은 이제 불빛조차도 깜박이지 않았다.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마을 쪽에서 차량 불빛이 보였다. 길가에 불안하게 서있는 내 앞에 검은 봉고 차 한대가 달려와 멈췄다.

 

 운전수는 유리문을 반쯤 내리고 어두운 길 쪽으로 손가락질 하며 ‘방비엥!’ ‘방비엥!’하며 서둘렀다. 나는 당연 어두운 밤길에 아무 차를 탈 수 없어 안 타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운전수는 여긴 잘 곳이 없다는 시늉을 했다. 문득 이 차를 놓치면 다음 동네가 나올 때까지 밤길을 계속 걷던지 아니면 산속에서 자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결정을 해야만 했다.    

 

 반쯤열린 차창 사이로 4~5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그사이 여자 두 명이 보였다. 그들은 분명 가족일거라는 확신이 들어 가격을 물어보고 봉고차에 올랐다. 두 시간이면 도착 하리라 예상했던 방비엥은 깜깜한 산길을 돌고 돌아 두 시간 반이 지나도 차는 계속 달린다. 그들을 믿고 탔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서도 몇 시간 동안 서로 말이 없었고 나만 혼자 뒷좌석에서 초조하게 산길 끝 도시 불빛이 보이길 간절히 기다렸다.   

 

 어둠은 끝이 없었다. 산길 어둠보다 차안의 침묵이 더 무서웠다. 밤길을 빠르게 달리는 봉고차 엔진 소리와 커브를 돌때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길에 미끄러지는 마찰음이 생생했다. 이제는 만약을 대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었기에 내가 어디쯤 여행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재 위치를 가족들에게는 남겨야 할 것 같아 휴대폰을 꺼냈다. 플래시를 오프 시키고 몰래 차안 모습과 마지막일지 모르는 내 얼굴을 찍어 휴대폰에 저장시켰다. 이것이 라오스 북쪽 어둠속을 내달리는 차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 까지 했다.   


 갑자기 봉고차는 큰길에서 방향을 틀어 좁은 산길로 덜컹거리며 급하게 올라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켜 운전수 얼굴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역시 말이 없었고 차안에 있는 다른 승객들도 침묵하고 있었다. 차량 불빛 쪽으로 외딴집이 보였고, 불 꺼진 집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차가 그 남자 앞에 멈춰 섰을 때, 

 빛이라곤 봉고차의 불빛과 깜깜한 라오스 하늘 별 빛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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