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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9. 2019

11. 함께 사라지다

     

 골목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있다. 


 쓰레기통과 거지들이다. 모두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내겐 특별하다. 골목골목 놓인 쓰레기통은 어느덧 요르단 풍경이 됐다. 비면 채워지고, 채워진 쓰레기통은 다음날 보면 비어있다. 필요 없는 것이 누군가에겐 필요하다는 걸, 쓰레기통이 보여준다.      


 쓰레기 버리기는 요르단 생활에서 가장 쉽고, 편한 일이다. 아니 쏠쏠한 재미도 있다. 집에 필요한 물건은 골목을 돌면 찾을 수도 있다. 해외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쓰레기 버리는 일이 날 고달프게 할 것이다. 규격 봉투 사용이나 음식물 분리하는 조건 없이 그냥 쓰레기통에 냅다 버리면 된다. 


 드럼통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인 쓰레기통은 2~4개씩 골목마다 있다. 길을 걷다가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내용물을 가끔 들여다본다. 대부분 생활 쓰레기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1/4 정도 차지한다. 

 ‘분리수거가 안 된 이 쓰레기를 요르단은 어떻게 처리할까?’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쓰레기통에서 쓰레기가 자동 분리수거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낡은 트럭이 쓰레기통 앞에 멈춘다. 시동을 켜 놓은 채, 그 안에 있는 쓸 만한 물건을 죄다 트럭에 싣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전자제품, 플라스틱 통, 유리병, 깡통, 옷가지 등이다. 트럭이 떠나면, 거지들이 와서 남은 옷이나 음식 등을 꺼내간다.


 마지막 해결사는 고양이였다. 골목마다 어슬렁거리는 수십 마리 고양이들이 쓰레기통 안의 음식을 먹어치운다. 요르단은 고양이 천국이다. 이들 고양이들이 길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분리수거 안 된 음식물 때문이다. 고양이 뿐 아니라 쓰레기통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길가에 있는 거지들이다.   

  

 “왜? 요르단은 길에 거지들이 많을까?” 

 늘 궁금했다. 그렇다고 현지인한테 물어보기도 어렵다. 워낙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라서 “그럼 한국은 거지가 없는 나라냐?”하며 짜증낼까봐 못 물어본다. 결국 거지 문제는 거지한테 물어봐야 한다. 거지와 친해져야만 물어볼 수 있기에 나는 거지와 사이좋게 지냈다. 보통 거지들은 엄마와 아이 한 둘로 무리지어 있다. 그들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 쓰레기통 옆에 자리 잡는다. 한번 앉으면 일주일 정도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퇴근할 때 그들 앞을 지나야만 집으로 갈 수 있다. 문제는 근무처인 문화부 앞에  마트가 있어 먹을 것을 사들고 그들을 지나쳐야 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내는 거지들 앞으로 양손에 마트 비닐봉지를 들고 모른 척 걸어가기 어렵다. 특히 3~5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 앞을 지나치기는 더욱 힘들다.


 생수나 과일 등을 꺼내준다. 알 수 없는 일은, 거지들이 먹을 것은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금과 옷을 원한다. 어린여자 아이 옷이 나한테 있을 리 없다. 더구나 난 거지한테 돈을 주는 행위는 끔찍이 싫어한다. 베트남 여행에서 거지에게 적선하고 바보가 된 일은 아직도 뼈에 사무친다.     


 4년 전인가? 나는 ‘호치민’ 여행자거리에서 길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모로 누워 나를 바라보던 네 살 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세 모녀가 누워 있었다. 맨 바닥에서 잠을 자려는 중이었다. 40살 정도 돼 보이는 엄마는 큰애는 4살이고, 옆에 누운 간난 아기는 6개월 되었다고 손가락으로 알려줬다. ‘어떻게 간난 아기가 길에서 잘 수 있을까?’ 걱정 되어 그냥 일어 설수 없었다. 나는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밥 먹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얼른 일어섰다.    


 늦은 밤이라 값싼 식당은 문을 닫았다. 길가에 있는 노점 앞으로 갔다. 바게트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이정도면 세 모녀의 굶주림을 충분히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고개를 흔든다. 나는 당황했다. 

 ‘그럼 지금 배가 고프지 않단 말인가?’

 어떻게 할 거냐는 태도로 서있는데, 거지 엄마는 앞장섰다. 세 모녀가 간곳은 놀랍게도 장난감 가게였다. 

 ‘거지가 음식을 마다하고 장난감을 원하다니?’ 

 혼란스러웠지만 음식 값이나 장난감 가격이나 비슷할 것 같아 하나씩 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골라 놓은 장난감은 여러 개였다. 과자와 음료수까지 계산대 위에 잔뜩 쌓아 놓았다. 지금 와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다음날 밤에도 밖으로 나왔다. 끔찍한 세 모녀를 만나지 않으려고, 어제 만난 그 장소를 피해 시장으로 갔다. 시장 사람들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데, 누가 내 팔을 당겼다. 돌아보니 어제 만난 4살 난 여자아이였다. ‘얘가 왜 여기에 혼자 있지?’ 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어제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어제 맨발로 다니던 엄마는 신발을 신고 있었고, 딸아이는 깨끗한 옷으로 바꿔 입었다.  6개월 된 간난 아기까지 유모차 안에서 내가 사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거지 엄마는 신이 났다. 유모차를 어딘가에 두고 나를 따라오려는 속셈으로 시장 안으로 사라졌다. 딸아이는 어제 내가 했던 것처럼 밥 먹는 시늉을 하며 뭔가를 사달라고 재촉했다. 시장 골목 끝에서 엄마가 간난아이를 안고 헐떡이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시장을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가짜 거지모녀는 날 애타게 불렀다.   

  

 누구와 친해지면 불편한 일이 따라온다. 한번 뭔가를 주기 시작한 거지가족과의 관계도 퇴근길을 고달프게 했다. 스스로 주는 것이 아니라 어쩔 도리 없이 동냥을 줘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없는 골목을 맘 편히 다니고 싶었다. 거지가족이 빨리 골목에서 떠나주길 기대했지만, 그들 입장은 내가 뭔가를 자꾸 주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불편한 순환 고리를 끊어야 했다. 퇴근길에 거지가족 사이에 끼어 앉았다. 


 마음 단단히 먹고, 그들 엄마한테 말했다.

 “왜 길에서 생활하느냐?”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 갔느냐?” 

 “감방에 갔다.” 

 “무슨 일로?”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무슬림 국가인 요르단에서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중범죄로 여긴다.    

 난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이 여자아이는 몇 살이냐?”

 “네 살이다.”

 “너무 어려 길에서 생활하기 어렵다. 내가 데려가서 키우고 싶다!”    


 그날 이후 거지가족은 내 집 앞 골목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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