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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22. Russia in July

    

7월의 러시아는 여행자를 놀래 킨다.

모스크바 상공에서 비행기가 미끄러져 내릴 때부터 놀란다.

도시인지 밀림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숲을 보고 놀라고, 

해가 지지 않는 도시 밤거리에 놀란다.    

백야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백야(白夜)는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태양이 지구 뒤쪽으로 넘어가지 않아 어두워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러시아에서는 이것을 ‘하얀 밤(white night)’이라고도 한다.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는 몽환의 길 위에 바이크 족들이 무리지어, 

희미한 세상 힘들게 살지 말자고 유혹한다.  

  

자작나무 숲이 가파르다.

키다리 자작나무는 줄기 껍질이 밀가루처럼 희다.

마른 나무가 자작자작 소리 내며 불에 잘 타서 자작나무로 불린다.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러시아를 상징하는 나무가 됐다. 

흰 눈 위에 광활하게 선 백 자작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몰린다. 

자작나무 숲 가장자리는 칼로 벤 듯 단정했고,

차를 타고 그 길을 달리면 숲이 성벽처럼 높아 햇살을 볼 수 없다.  

    

우산 없이 어디에나 갈 수 있다.

비는 하루에 여러 차례 오지만 잠깐씩 내리다 그친다. 

비를 피해 다니다 보면 곧 볕이 들고 햇살이 따뜻해진다.

집을 나설 때 우산과 긴팔 옷을 챙겨야 할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비가 오는 날 또는 맑은 날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싱그러운 계절이 7월의 러시아다.   

  

숲은 높고 깊다. 

아침은 황금빛, 낮은 푸른빛, 밤에는 희미한 진홍빛으로 숲이 물든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면 그 빛들을 몽땅 지날 수 있다. 

도시 땅 반쯤이 공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공원이 많은 도시가 모스크바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공원이 있고, 공원을 지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지하철은 승객을 3분 이상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지하철 플랫폼에는 의자가 몇 개 없다. 

승객들은 앉을 필요가 없고, 뛰어가서 타는 사람 없다. 

한 역을 가나 오십 역을 가나 요금이 같으니까 가급적 멀리 가보자.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 지하철을 탈 수 없을 만큼 엄청 깊게 내려간다. 

그것은 폭격을 피할 수 있도록 지하 방공호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핵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도록 모든 역은 땅속 깊이 만들어졌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세계 최고다. 

열한 개 노선이 중앙에서 도시 외곽까지 우산살 모양으로 쫙 뻗어 있다. 

직경 20㎞ 지점에 또 한 번 원형으로 이 노선들을 이어준다. 

도시 주위를 한 바퀴 핑 도는 구조다. 

모스크바 지하철이 지닌 가장 놀라운 특징은,

모든 역을 차별화하여 웅장한 조각품과 화려한 그림으로 장식된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맘껏 잠들어보자. 

졸다가 안내 방송을 듣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도시 중심으로 진입하는 모든 열차는 남자 목소리, 

외곽으로 나가는 열차는 여자 목소리로 방송한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열차는 남자 목소리,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열차는 여자 목소리로 안내한다.    


7월의 러시아는 여행자를 슬프게 한다.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끈 나시 차림 여인네의 쌀쌀함 때문이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다정히 말하는 사람이 없어, 

셀피만 무수히 찍다보면 슬프고 화가 치민다. 

도통 여행자에게 관심이 없어 서러운 나라다. 

이곳은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이 있었던 땅이다. 


그는 말했다.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그의 위로를 받기 위해 ‘푸시킨’ 생가를 방문해보자.

러시아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그를 알면 놀라고,

여느 사내와 진배없는 찌질한 생을 살다가 죽은 아이러니에 또 한 번 놀란다. 

우리에게 절망의 나날을 참고 견디라고 충고하면서, 

정작 자신은 아내를 탐하는 남자에게 분노해 결투를 벌인다. 

그는 총에 맞아 38세의 나이로 죽었다.    


여행자를 떠나는 날까지 놀래 킬 준비가 된 사람은 ‘톨스토이’였다.

7월의 싱그러운 숲을 뚫고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300km를 달려갔다.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에는 그가 살았던 집이 있다. 

‘톨스토이’는『전쟁과 평화』『부활』등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그의 무덤은 달랑 한 평밖에 안 되는 풀 무덤뿐이었다.   

  

놀랍고 허탈했다. 

그는 흔한 대리석이나 비석하나 없이 관(棺) 크기만 한 풀 더미 아래 누워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땅은 한 평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죽어서 실천했다. 

그의 무덤 앞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똑같이 말한다.   

 

“아무것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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