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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8. 2019

3. 내가 사랑해야 할 곳

     

 하늘이 크다. 

 높은 언덕에 올라온 듯 구름이 가깝다.

 햇빛을 담은 구름은 빗자루로 쓸어 모은 단정한 자세로 둥실 떠있고,

 하늘은 넓고 맑고 파랬다.

 바람이 꼼짝 않고 서 있을 때, 

 햇볕은 땅으로 쏟아져 유리가루처럼 쟁쟁히 흩어졌다.

 땅은 태양에 타서 붉고, 집들은 흙먼지에 물들어 똑같다. 

 흙색 집들은 빛에 구워 쌓아둔 성냥갑처럼 산비탈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10월인데도 여태껏 여름 햇살이다. 건조하다. 나무도 건조하고, 공기도 건조하고, 걷는 사람 뒷모습도 건조했다. 차들이 일으키는 먼지마저 낮게 일었다가 건조하게 가라앉는다. 우리를 마중 나온 사무실 직원에게 물었다.    

 “비가 언제 왔나요?”

 “음! 한 7개월 동안 비 안 왔어요.”

 “언제 오나요?”

 “요르단은 겨울에만 비가 와요.”    


 2014년 10월 10일. 처음, 요르단은 모두 건조했다.

 남자둘(시니어 단원), 여자 셋이서 바람 한 점 없는 공항을 내렸다. 마중 나온 코이카 사무실 직원과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달리는 차가 바람을 일으켰다. 뜨거운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다시 닫았다. 꽃도 없고 새도 없다. 신기하게 7개월간 비가 없었는데도 듬성한 나무는 푸르다. 물기 없는 땅에서 버틴 나무는 고요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 위치한 유숙소(단원들이 거주하는 임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코이카 사무소 소장과 선배 단원들이 우리를 환영해 줬다. 건조한 땅에서 견딜 수 있는 열량 높은 중국 음식으로.      


 선배 단원과 처음 택시를 탔다. 운전수는 쉴 새 없이 뭐라고 지껄인다. 고개를 돌리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한테 하는 말인 것 같다. 껄렁한 그가 내뿜는 담배연기가 차안에서 맴돈다. 빨리 내리고 싶었으나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서있는 차 사이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큰길을 오간다.   

 은행에서 요르단 돈으로 환전하고 휴대폰을 개통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휴대폰에 요르단 번호가 생겼다. 079-772-3945.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코드였다. 쇼핑몰은 크고 사람들로 붐볐다. 카트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 손수 해먹어야 할 음식 재료를 사서 유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곳에서 합숙한다. 적응 훈련이 끝나면 각자 필드로 나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 집을 구하고, 밥을 해먹고, 쓰레기를 버리며, 이웃과 어울리는 현지인이 돼야 한다.     


 어둠이 오자마자 달이 떴다. 처음 요르단 밤을 보려고 발코니로 나갔다. 차가 요란하게 달리고 있다. 히잡을 쓴 여자들이 신호등이 없는 길을 건너고 있다. 차는 그녀들을 피해서 쏜살같이 내달린다. 가로등 없는 골목은 어둡고 조용했다. 우왕~우왕! 하는 소리에 놀라 하늘을 쳐다봤다. 코란을 읽는 소리가 어두운 하늘을 덮어씌웠다. 모스크에서 울리는 ‘아잔(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은 내가 요르단에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줬다.      


 온 하루를 시차에 부대꼈는데도 잠이 안 온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쨌거나 시간은 갈게다. 설렘과 두려움의 틈바구니에서도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학원에 가서 악명 높은 아랍어를 수업 받아야 한다. 설레면서 떨린다. 젊을 때 공부 못한 한이 남아 요즘 공부는 흥미롭다. 하지만 매주 보게 될 시험은 곤욕스럽다. 나는 시험 없는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오래 앉아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간신히 마음을 달래어 잠들었다. 다시 아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끊어 온 동네를 덮었다.  시끄러운 아잔 소리에도 잠들 수 있는 날이 언제 일런가? 첫 밤이 아슴아슴 지나갔다.     


 코이카 해외봉사 단원이 처음 요르단에 도착하면, 2개월간 현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이 기간에 문화를 익히고, 버스 타기, 물건 사기, 병원 가기 등에 적응한다. 나는 현지 적응 훈련은 대충하고 공부만 했다. 아랍어를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단원한테 지지 않으려는 오기로 공부했다. 같은 조건에서 남들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스스로 늙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늙어서 그렇다는 위로는 슬프다.


 나는 하루 종일 수업 받고 돌아와 새벽까지 아랍어를 공부했다. 동기들은 잠자러 들어가고 나 혼자 거실에 놓인 책상에 앉아있다. 학원에서 뜻도 모르면서 써 온 노트를 폈다. 

 ‘이걸 언제 다 외우나?’

 ‘아니야, 외우지 말고 이해를 해야 돼!’

 이래저래 그냥 잘 수도, 밤을 샐 수도 없는 밤이 애처롭다. 풀을 벤 들판에서 마구 솟아오르는 잡초처럼 생긴 아랍어가 맷돌이 되어 내 가슴을 눌렀다.  


 처음, 요르단. 

 아랍어가 나를 밤새 태웠다. 

 바람 없이도 내 몸은 마른 짐짝처럼 활활 탔다. 

 건조한 땅에서.     


 내가 사랑해야 할 곳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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