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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8. 2019

4. 미친 아랍어


 ‘살면서 이만큼 미치게 한 것이 있었을까?’  


 아랍어는 나를 미치게 했다. 언어란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아랍어는 이런 보편성을 무시한 언어였다. 미친 언어임이 분명하다. 봉사단원으로 요르단에 왔을 때, 남들이 모르는 아랍어를 공부한다는 자부심에 맘 설렜다. 그런데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언어를 만든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미쳐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미친 언어 때문에 그렇게 매일 매일 미쳐 갔다.  

   

 전 세계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22개국이다. 13억에 달하는 무슬림들이 종교어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쓰는 아랍어가 다 같은 아랍어가 아니라는 거다. 아랍어를 배웠다고 이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가 아랍어 사용국가인 모로코나 튀니지를 여행 갔을 때, 요르단에서 쓰던 언어를 구사했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하는 말 일부 밖에 이해 못한다. 그 이유가 있었다.


 아랍어는 ‘푸스하’와 ‘암미아’라는 두 가지 언어로 나뉜다. ‘푸스하’는 신문이나 출간 물에 쓰는 언어고, ‘암미아’는 실생활 대화 언어다. 표준 아랍어인 ‘푸스하’를 배우면 읽고 쓰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말을 하려면 22개국 방언을 모두 배워야 한다. 아랍권에서 통용되는 말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아랍인이 나라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아랍어가 어렵다고 난리들인가?’ 거기다 아랍어가 변하는 패턴은 배우면 기절한다. 하나의 단어가 줄기에서 가지로 연결되어 여러 형태로 분파된다. 또한 모든 사물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시켜 각기 다르게 표현한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열 사람’ 등을 지칭하는 말이 모두 다르다. 내가 말하는 대상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아니면, 남녀가 섞여있는 그룹인지 그때그때 판단해야한다. 언어 표현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분포된 모든 사물(나무와 꽃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들이 입에서 감각적으로 흘러나와야 아랍어를 말할 수 있다.     


 외국어 하나 더 배우는 것도 어려워 죽겠는데, 요르단에서는 두개 언어를 익혀야 한다. 문어체인 ‘푸스하’와 구어체인 ‘암미아’를 집단마다 다르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언어인 ‘암미아’만 배우면 요르단 어디에서든지 통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엘리트 집단은 ‘푸스하’로 말하고, 장사꾼들이나 시골 사람들은 ‘암미아’로 말한다. ‘암미아’는 방언이라 사전을 뒤적여도 뜻을 알지 못한다.


 요르단에 처음 도착해서 현지 적응 훈련 두 달간 열심히 공부해서 파견 기관인 문화부에 출근했다. 어라? 죽자 사자 배운 아랍어인데 그들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 내가 배운 아랍어는 ‘암미아’였고, 그들은 ‘푸스하’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 대화언어조차 통일되어 있지 않다니?’ 다시 ‘푸스하’를 공부해야 했다. 그때부터 헷갈려 미치기 시작했다.   

 

 문화부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도대체 요르단에선 어떤 언어를 배워야 해?”

 “‘푸스하’냐? ‘암미아’냐?”

 그는 코란(이슬람교의 경전)에서 바탕이 된 ‘푸스하’를 배워야 한다고 점잖게 말했다. 왜 “길거리 언어인 ‘암미아’를 배우려고 해?”하고 반문했다. 다시 ‘푸스하’를 공부하니 ‘암미아’를 잊어버린다. 오지 아이들과 협력 활동을 하기위해 ‘암미아’를 공부하니 또 ‘푸스하’를 잊어버렸다. 갈팡질팡하다 요르단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요르단은 골치 아픈 것이 언어뿐이 아니다. 생활용품 사용도 헷갈린다. 전열기 스위치 on/off 방향도 우리 것과 반대로 동작된다. 글쓰기 체계도 완전 다르다.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지만,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이건 의도된 차별화전략인 것 같다. 

 “너희들이 왼쪽에서부터 글을 쓴다면, 우리는 오른쪽에서 시작하겠다.”

 이런 연유로 책과 노트 등은 맨 뒷장이 첫 페이지가 되는 셈이다. 방향만 바꾸면 간단할 것 같지만 영어를 섞어 문장을 수정해보면 미칠 것 같다. 컴퓨터 커서 위치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영어 단어를 지우면 엉뚱하게 아랍어가 지워지고, 아랍어를 지우면 영어가 지워져 짜증 제대로다. 이런 부분들이 서양과 반대인 것을 봐도 아랍 민족들은 배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국 문화를 타 민족이 접근할 수 없도록 어렵게 만든 고약한 심보를 보는 것 같다.      

  

 처음 요르단에 파견된 봉사 단원들은 아랍어를 열심히 공부하려는 열정이 있다. 어려운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그래서 생활비를 쪼개 비싼 학원에 다니고 현지인들과 스터디 그룹도 만들어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친 아랍어에 좌절하게 된다. ‘누가 먼저 아랍어 공부를 포기 하느냐?’ 이건 시간문제다. 요르단에 막 파견된 단원들 블로그(blog)를 읽어보면 아랍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 다짐이 6개월을 못 넘긴다.     


 결국 요르단에서 살아남으려면 ‘푸스하’와 암미아’ 모두를 공부해야 한다. 아랍어가 어렵다보니 말하는 언어인 ‘암미아’ 하나만 공부하려고 하는데, 문자언어인 ‘푸스하’도 해야 한다. 아랍어도 체계적으로 파생된 언어다. 문자 언어인 ‘푸스하’를 공부하면 신문이나 책을 볼 수 있고 아랍어도 이해할 수 있다. 구어(口語)인 암미아’를 빨리 말하기 위해서도 ‘푸스하’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미친 아랍어를 하려면 이런 험난한 고비를 넘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참 안 된다.    


 나는 오늘도 미치고 있다. 의욕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지금 관둬도 남들은 이해할거라는 생각이 날 자꾸 달랜다. 내일 수업도 나를 기절시킬 것이다. 그래도 포기는 할 수 없다. 언제 내가 공부다운 공부를 한 적이 있었던가? 정신을 놓고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없을 거다. 제대로 해본 공부가 없었는데, 아랍어는 미칠 정도로 하고 있다. 고생한 시간과 학원에 바친 돈도 아까웠다. 아랍어를 집어치우는 것은 ‘요르단살이’를 때려치운다는 의미다.     


 아랍어로 고통 받는 요르단 생활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나는 요르단에서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아랍어가 내게 무슨 짓을 하던지 간에 나는 아랍어를 사랑해야 것이다. 


 아픔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

 조금만 더 미치다보면 운 좋게 미칠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나한테 이런 일이 닥치리라 생각도 안했다. 그런데 일어나고 말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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