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시즌이다. 코로나 엔데믹과 함께 모든 학교행사가 시작됐다. 공개수업, 운동회, 소풍… 코로나가 끝나간단 건 좋지만 일하는 엄마에게 행사가 잦은 건 썩 좋진 않다.
어쨌든, 싸야지 도시락. 소풍이니까. 지난주 둘째는 유부초밥이 좋다고 했는데(땡큐) 이번주 첫째는 김밥이 먹고 싶단다. 싸야지 김밥. 소풍이니까.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났다. 7시 20분에는 출근해야 하니 도시락 싸고 출근 준비하려면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자기 전 불려뒀던 밥을 밥솥에 안쳤다. 당근을 삭삭삭 채칼로 썰어 소금에 절여놓고 시금치를 팔팔 끓는 물에 데쳐 참기름, 다진 마늘, 소금으로 간 맞춰 무쳤다.
계란을 탁탁 풀어 약간의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이 달궈지면 얇게 둘러 지단을 만들고, 그 팬에다 절여둔 당근에 물을 꼭 짜내어 볶고 김밥 햄을 앞뒤로 노릇노릇 구웠다. 계란지단은 식으면 돌돌 말아 채 썰고, 다된 밥은 한 김 식혀 참기름 두 바퀴 빙그르르 두르고 소금 톡톡 털어 밥알 살려 휘적휘적해두면 재료준비 끝.
다음 김밥 김을 위에 얇게 밥을 펴 바른다. 재료 듬뿍 넣어 김발로 감싸듯 말아주면 서진이네 정이사 부럽지 않은 김밥왕이 된 기분이다. 아이 도시락에 넣으며 남은 꼬다리를 내입에 넣었다. 요리에 큰 재주는 없지만 이만하면 성공적인 걸! 마카롱여사님의 김밥레시피는 언제나 정답이다.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고 둘째 아침용으로도 남겨두고 남편도 회사에 가져가 점심으로 먹으라고 담아놓은 뒤 출근을 했다.
출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이 왔다. 둘째는 당근 때문에 토할 것 같다고(?) 얼마 먹지 않아 김밥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원래도 야채를 안 먹으니 그럴 수 있는데, 남편도 저녁에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왔단다. 아니 김밥은 냉장고에 들어가면 맛이 없다고! 성의를 봐서 그냥 좀 들고 가주면 좋지 싶은 서운함과 아들의 혹평에 기분이 몹시 상한 채 오전시간 업무를 끝냈다.
오후에 집에 도착한 딸에게 전화가 왔다.
내 신경은 온통 김밥 도시락이었다.
“점심 맛있게 먹었어?”
“아니, 김밥은 한 알 먹고 과일은 다 먹었어”
으음? 한알? 잘 못 들은 건가?
퇴근 후 딸의 도시락통을 열어본 순간… ‘한’ 알 먹었단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 새벽 나의 잠, 나의 노동, 모든 시간…
다시는 김밥을 말지 않겠다! 다짐하는 순간이었달까.
저녁을 먹으려고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사실은 뒤끝 많은 엄마의 미련이기도 했다. 왜 한 알만 먹었을까.
김밥이 차가워졌어. 차가운 밥은 싫어.
하나 먹어봤는데 맛은 있더라
맛은 있더라. 이 한마디가 그토록 듣고 싶었나 보다.
뭔지 모를 서운함이 갑자기 사르르 녹아내렸다.
(방긋) 맛은 있었어? 또 해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