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오늘따라 좀 부지런했다.
요가 수업이 없는 날이었지만 5시에 일어나 아이들 수저통과 물통을 챙겨두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아이들 아침식사 메뉴도 정했겠다, 여유로운 아침에 커피를 한잔 내렸다. 요즘 즐겨보는 영화 <인턴>으로 쉐도잉 하는 유튜브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마치 어제 연휴 마지막 날을 보내며 '내일 출근 실화냐'라고 한 어젯밤의 나에게 보란 듯이.
보통의 날이었다면 남편이 아이들을 깨우고 등교준비를 시키는데, 오늘은 내가 깨워주고 무지막지하게 뽀뽀세례를 하고 나서야 현관을 나섰다. 8시에 회사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늦어도 7시 20분에는 나가야 한다. 7시 21분, 26분, 31분 이 세 번의 열차 중 하나는 타야 8시 전에 출근도장을 찍을 수 있는데, 오늘 같이 부지런을 좀 떨었다 싶은 날에는 지하철역까지 뛰어가지 않아도 됐다.
어쨌든 7시 21분 열차를 탔다.
아침에 보다 만 영어유튜브를 보며 평화롭게 몸을 실었다. 지나가는 역마다 누구는 분주하게, 누구는 여유롭게 타고 내리며 여느 출근길과 다르지 않은 공기와 온도를 느꼈다.
그런데, 역에서 출발하려던 어떤 순간, 무언가 심상치 않은 덜컹거림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누가 부딪힌 건가 싶을 정도로 큰 덜컹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만 어머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한참을 열차가 출발하지 못했다. 1분 정도 지났을까(1분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다),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차 고장으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으잉? 갑자기?! 그렇게 한 2-3분을 더 서있던 열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괜찮나 보다... 그렇게 믿고(싶었던) 가는가 싶더니 다음역에 도착하자 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차 고장으로 운행하지 않사오니 승객 여러분은 한분도 빠짐없이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불을 껐다 켰다 (마치 종점에 다다를 때나 봤던) 하는 게 아닌가! 여기저기 탄식이 흘러나오며 열차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는 다음 열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도저히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한들 열차를 몇 개나 보내야 할지도 가늠이 안 되는 인파였다.
일단은 뒤로하고 역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일단 택시를 타보려 했는데 회사까지 가깝지고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라 출근시간대 택시가 영 안 잡혔다. 다시 역으로 내렸갔다. 원래의 목적지 회현역까지 가려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 4호선으로 갈아탔어야 하는데, 일단 실패했으니 다른 루트를 찾아보자.
1. 청구역-약수역-충무로역-회현역= 15분
2. 청구역-신당역-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회현역=22분
3. 청구역-동묘 앞역-서울역=23분
(그 와중에 세 개의 루트나 생각해 낸 나 칭찬해...)
가장 빠른 1번을 선택했을 거라 예상하겠지만, 가장 오래 걸리는 3번을 선택했다. 왜냐고? 회사건물이 회현역과 서울역사이에 있었단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회현마니아에게 이렇게나 습관이 무섭다)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종로투어를 마치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기나긴 출근길이었다. 7시 57분. 시계를 보는 순간 두 자아가 싸우기 시작했다. 뛰어,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