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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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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Sep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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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원피스의 엄마는 계속 바라봤다. 건넌방의 상복을 입은 엄마의 절뚝이는 무릎부터 중얼거리는 입술까지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입사 면접의 감독관처럼 응시자의 모든 행동을 평가하는 듯했다. 만약 상대가 어색하고 힘겹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게 그건 이 상황에서 취할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긴장된다면 긴장된 채로 보여야 했다.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짓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녀에게는 더 거짓이다. 그녀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엄마, 잠깐 쉬어. 뭐라도 먹는 게 낫지 않겠어?"



건넌방의 엄마와 같은 상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말했다. 그녀에게도 동생의 죽음은 생각하지 못한 소식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적은 가능성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었지만 모른 척 해왔다. 사실 죽은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이고 다만 그 시기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이었다. 물론 그녀가 품은 의심의 조각은 그 시기마저도 동생이 스스로 결정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아는 척을 한다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믿었다. 살아남는 건 동생의 몫이었다. 옆에서 뻔한 말을 하는 것은 오히려 동생의 상처를 끄집어낼 뿐이었다. 동생이 평소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 때, 예를 들어 며칠이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마다 그녀는 화도 내고 타이르기도 해 봤다. 상소리도 질러봤고 토닥여도 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동생은 더욱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동생의 상처와 고통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다만 그 사실을 다시 직면하게 될 때 동생은 더욱 몸서리쳤다. 언니인 입장에서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동생은 조금씩 그녀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이런 결말이었다. 이딴 이야기밖에 쓰지 못하다니. 동생은 최악의 작가이자 감독이다.


동생은 약 2개월 전 핀란드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한겨울에 왜 하필 거길 가냐며 한소리 했다. 그래도 연락을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어느 시간에 어디에 있다는 것만 알아도 상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줬다. 동생이 숙소 주변을 거닐고 때 되면 밥을 먹겠거니 하고 떠올릴 수 있었다.  동생은 틈틈이 헬싱키 대성당이나 얼어붙은 발틱해, 어스름한 오후 같은 핀란드의 아침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곤 했다. 그 덕에 그녀의 상상은 점점 더 생기를 얻었다. 실재하는 분명한 배경그림을 넣을 수 있었고, 어설프게나마 서늘한 공기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다 연락이 끊겼다.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었다. 상상을 반복하면서 머릿속 사진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가끔은 갈매기도 그러넣고 어떨 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국인 커플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배경은 더욱 디테일을 더해갔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조금씩 흐려졌다. 옛 사진을 보며 도움을 받지만 그건 지금이 아닌 과거의 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동생을 잃어가고 있었다. 혹시 동생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괜찮을 거야. 스스로 다독였다. 전에도 그랬잖아. 스스로 되새겼다.



이틀 전 남편과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함께 집을 나선 직후였다. 그녀는 거의 다 식어버린 된장찌개를 다시 데우며 식탁 위 남은 반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동생이 발견됐다고. 어감이 이상했다. 발견? 하지만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핀란드 북부 어느 호수에서 동생이 떠올랐다. 그래서 발견됐다. 날이 풀리면서 얼어붙은 호수가 녹기 시작했다. 그제야 동생은 떠올랐다. 그렇게 동생의 연락두절과 흐려진 그녀의 상상력의 한계는 설명됐다.


어쨌든 자초지종 설명은 빼고 내일 한국에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 뒤에 엄마가 뭐라고 더 말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계속 흐느꼈기 때문인 거 같다. 수화기 너머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규칙적으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바로 갈게."


전화를 끊고 그녀는 소파에 앉았다. 너무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생에게? 자신에게? 이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그녀도 몰랐다. 그냥 화가 났다. 손을 꽉 움켜쥐면서 소파 커버가 찢어졌다.


탄내가 났다. 아, 된장찌개. 다급히 소파에서 일어난 그녀는 이미 국물이 다 말라버린 된장찌개를 계속 달구는 불을 껐다. 싱크대의 수도를 튼 그녀는 냄비 바닥에 달라붙은 감자와 양파를 뜯어내고 철수세미로 긁어냈다. 하지만 차갑게 굳어버린 그을음 조각들을 떼어낼 수 없었다. 포기했다. 설거지를 끝낸 그녀는 탄내를 빼기 위해 싱크대 앞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열었다. 아침 공기가 싸늘했다.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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