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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Dec 27. 2018

유학생 이비씨, 다시 노동하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로렌츠 디펜바흐


아침 안개인지 구름에 살짝 가려진 에펠탑(La tour Eiffel). 여전히 가끔 내가 파리에 있다는 게 낯설면서도 이상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서울을 벗어나 파리에서 생활하는 것은 확실히 여유롭다. 시간이 많다. 물론 학교 지원을 위해 당장 프랑스어 어학점수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어 때문에 골머리를 썩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상사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는 것과 같은 강제력 있는 압박은 없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아몰라" 하며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결국 나 하기에 따라 하루 24시간은 고스란히 남는다.


"여기 오래 살던 사람들은 한국에 적응 못하고 대부분 다시 돌아와"


알바를 하는 한식당의 삼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활이란 녀석은 차곡차곡 모아둔 자본을 거의 다 까먹듯이 했다. 적금에 묶인 2차 생활 자본이 풀릴 때까지는 돈을 벌어야 했다.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가지지 못한 유학생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한식당만이 거의 유일했다. 그래도 대도시인 파리라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한식당이 있었다.  


일을 구하며 지켜본 결과, 8월 즈음이 아르바이트 구인이 많았다. 일반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프랑스 학교 대부분이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지라 학업 때문에 혹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싶다. '프랑스존'이나 '프잘사(프랑스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트를 통하면 일거리 정보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곳들을 뒤적뒤적거리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식당 홀 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 어느 날 일하기 전에 점심을 먹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같이 있던 삼촌이 나에게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 하며 물었다. "한 6개월쯤 됐어요"라고 답하니 저런 말을 하셨다. 어쨌든 한국과 비교해 이곳 생활이 여유롭다 보니 이곳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의 빠른 템포와 업무량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긴 프랑스는 퇴근 후에 업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으니 그럴 수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가 갇혀 있는 거 같아!!


근데 이곳의 여유는 프랑스 사회 특유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다녔다고 해도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라 공부를 하겠다고 온 사람들에게 선뜻 일자리를 내줄 곳은 없다. 더군다나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프랑스인들조차 직장을 구하는 데 애를 먹는 시기다. 만약 이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냥 "아 여유롭고 좋구나~"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 돌아갈 자신은 없고 이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계속해서 학업을 연장하는 경우들. 그러니 만약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빨리 돌아가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


한동안 혼자 남아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다. 물론 그런 삶이 문제라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나. 다만 한편으로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절반 이상은 도피성 유학이었다. 그건 사실이다. 그 외에는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것들, 예를 들어 여유로운 삶과 시간을 즐기며 미처 못한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여유 있는 삶과 시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즐길 것인지, 하고자 하는 공무는 무엇이고 그걸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런 물음들이 이어졌다.


너도 갇혀 있는 거니 아님 자고 있는 거니?


어떤 친구는 내가 이런 고민과 생각을 한다고 하면 "너무 고민이 많아. 그냥 지금을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그 말도 맞다. 남들 눈에 나의 프랑스 유학이 실패 혹은 낭비로 보일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면 크게 아쉽진 않을 거다. 그래도 나 자신 스스로 어떻게 즐기고 자족할 것인지, 무한정 생겨버린 여유와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는 생각해봄직한 문제였다. '자유'와 '게으름'은 서울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파리에서 서쪽으로 혹은 서울에서 서쪽으로 쭉 가다 보면 서로 만나는 것처럼 이 둘은 어디선가는 이어져 있는 듯하다. 이 사이에서 어떤 줄타기를 해야 할까?


점심 휴식을 마치고 일하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단순한 육체노동과 서비스업이 섞여 있는 홀서빙. 어쩌면 어떤 일이든 노동을 한다는 것이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태와 게으름을 깨워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직접 몸으로 깨닫고 무한처럼 느껴졌던 시간의 유한성을 다시 알게 해주는 것. 그러니 파리에서의 생활도 영원하지 않으며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


매주 일하는 마지막 날 그 주의 팁을 받는다. 프랑스에서 팁은 필수는 아니지만 종종 주는 손님들이 있다. 은근히 살림에 큰 보탬. 이 날 처음으로 10유로짜리 지폐를 받았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입구에 써붙여 있으면서 더욱 잘 알려진 문구다. 사실 나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위키피디아에 독일의 문헌학자 로렌츠 디펜바흐가 노름꾼들이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소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에 처음 썼다고 한다. 폭압과 재앙의 상징이었다가도 인간을 자유케 한다는 모순적인 '노동'에서 난 다시 내가 처한 현실의 이중성을 보았다. 어쨌든 나에게는, 노동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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