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더 높은 그 곳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 <날개>
내 기억에 아주 어렸을 때 2층 버스가 있었던 거 같다. 만약 맞다면 한 번 정도만 탔던 거 같다. 그 정도로 흔하지 않았거나 잠깐 있었던 이벤트 버스 같은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걸수도 있고.. 아무튼 서울 내에서 한 번은 탔던 거 같고 2층에 올라 창밖만 내다봤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내 기억이 맞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서울에 다시 2층 버스가 생겼다. 서울과 외곽을 연결하는 빨간버스 중 일부가 2층 버스로 바뀐 것이다. 서울 바로 밑에서 살던 나에게 2층 버스는 ‘그림의 떡’이자 천장에 대롱 매달린 자린고비의 굴비 같은 것이었다. 우연히 볼 때마다 “오오! 타고 싶다!” 싶었지만 굳이 탈 필요는 없는 약간은 뜬구름의 이야기같달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2층 버스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신촌인지 여의도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날따라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고 다시 지상으로 나오기가 귀찮았다. 그냥 근처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자칫하면 시간대 상관없이 차로 가득한 교통체증을 감수해야 했지만 왠지 날도 좋고 창밖을 보고 싶었다. 버스 정거장에 서서 빵집에서 산 소시지빵을 오물거리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빨간 2층 버스가 눈앞에 섰다. 이 버스가 지나는 길목에 내 목적지가 있었다. 급히 남은 빵을 입에 털어 넣고 후다닥 올라탔다.
안타깝게도 가장 전망이 좋을 2층 맨앞자리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바이킹도 가능한 한 앞쪽 아니면 뒷자리 아니던가. 나는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 봤다. 남들보다는 한 2미터 쯤 높은 곳에서 밖을 내려다 보는 것은 약간은 알량한 권위욕을 주었다. 뭔가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늘상 지나는 길이었고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즐거웠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2층을 노렸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간 숙소에 2층 침대가 있다면 항상 윗자리를 차지했다. 혹시 자다가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화장실가려고 어두운 밤 사다리를 내려오다 넘어지지 않을까?! 혹은 일어날 때 천장에 이마를 찧지는 않을까?! 별의별 걱정이 들었지만 항상 2층을 선택했다. 친구들에게는 “너희들이 불편할까봐 내가 희생하는 거야”라며 생색을 냈다. 그러곤 2층에 올라 바닥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아해들아! 너희들이 바닥에서 아옹다옹할 때 나는 하늘을 거닌다! 말하자면 노는 물이 다른 거지!” 이런 식의 자아도취랄까?
파리에는 많은 2층이 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늘상 2층 관광버스를 마주친다. 일반 버스와 지하철은 물론 대부분 단층이지만 유독 기차만큼은 2층짜리가 많다. 난 항상 기회가 생길 때마다 2층으로 오른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야를 누리며 잠시나마 조금은 특별해진 거 같은 지위를 누린다.
사실 파리로 유학을 온 이유 중 하나는 뭔가 다르고 싶어서기도 하다. 이곳에도 수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특별함’을 지니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럼에도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결혼 하자마자 아내와 동반 유학을 떠나고 그래도 조금은 뭐라도 있을 거 같은 파리를 택함으로써 ‘다름’의 맥락을 차곡차곡 쌓으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곳에는 너무나 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면에서 나보다 더 그럴 듯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의 특별함이 사그라드는 거 같은 느낌이 들면 그때마다 2층 버스와 2층 기차를 꿈꾸게 된다. 비록 허황된 임시의 도피일지는 몰라도 잠시나마 다름의 도취를 느낄 수 있으니까. 해외 유학을 왔다는 것, 낯선 곳에서 생활을 할 때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안 그러면 또 다시 무색무취해지는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