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에게 없는 것이 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동백꽃> 김유정
패션, 미술, 음악, 요리 혹은 영화.
지금까지 내가 파리에서 만난 유학생들이 이곳에 온 이유들이다. 나도 평소에 관심을 갖는 주제들이긴 하다. 전문성은 없지만 요리하는 건 최근 들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고, 약간의 예술적 허세는 나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패션 역시 트렌드에는 둔감하지만 언제든 환영하는 바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이것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인문계열 출신이다 보니 학교에서 예술, 좀 더 정확히는 미학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은 있다. 하지만 잠시 거쳐가는 수준이었다. 연극 동아리를 오래 하긴 했지만 그 역시 취미의 연장선이었고 내 주위에 예술 영역에 투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몇 명 있긴 했지만 내 지근거리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내가 이 영역에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일이 거의 없었다.
기자 생활을 잠깐 하면서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다. 사채업자에서부터 법조인과 금융인까지 그 범위는 광대했지만 이 역시 일의 연장선이었다. 인간적인 교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게 기자로서 역량 없음을 드러내는 건지도 모르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내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대기업 직장인에서부터 학원 강사, 카페 매니저 등 각자의 위치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서 선택 가능한 것들로 "오 정말 신박한데?!" 혹은 "오 그런 게 있었구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오히려 완전 다른 부류, 위에서 언급한 예술이나 요리, 이 영역이 우리에겐 오히려 소수였다.
하지만 이곳에선 되레 내가 소수다. 지금까지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뿐 아니라 외국인 학생들도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과 패션, 혹은 요리가 가장 큰 이유였다. 혹은 단순 어학 목적이거나.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들로 채워졌다. 내가 지금까지 가지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 이는 신선한 환기를 주었다.
얼마 전 보석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가 화학을 전공한 다른 친구들하고 미술관을 갔는데 작품을 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는 거였다. 본인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작품을 보는 반면 그들은 화학자의 관점에서 색이 어떻고 채도가 어떻다는 걸 분석했다는 거였다. 같은 것을 보면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로 놀라웠고 즐거운 충격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매일 같은 충격을 받고 있다. 음악가의 시선에서, 영화인의 시선에서,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내가 갖고 있지 못했던 또 다른 각도를 바라본다. 유학을 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틔운다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공부했다는 뜻은 아닌 듯하다. 같은 한국인이든 혹은 외국인이든 제3의, 제4의 영역과 관점을 취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유학의 의미이지 않을까. 나도 그들에게 그런 즐거운 충격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