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 날씨 때문이다.
햇빛이 눈 부셔서 그랬다.
-<이방인> 알베르 까뮈
파리에 오기 전에 들었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날씨였다. 해가 쨍하다가도 몇 분 지나지 않아 구름이 가득하더니 이내 비가 내린다. 그러다 또 잠깐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내리쬔다. 변덕스럽기가 프랑스스럽다고들 했다(사실 아직은 '프랑스인들이 변덕스러운가?'에 대한 명제에는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사람이란 그렇듯 다 성격이 다르고 또 아직 프랑스 사회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보니). 아무튼 확실한 건 아침에 챙겨본 일기예보가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휙휙 바뀌는 경우는 많다. 아무리 날이 쾌청해도 우산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특히 겨울 날씨에 대한 악명이 높았다. 프랑스에 오래 사셨던 분들도 "한국에 갈 일이 있으면 이왕이면 겨울에 가"라고 충고해줄 정도였다. 우리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3월 초였다. 다행스럽게도 혹독한 한겨울은 지나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툼하다 싶은 온갖 겨울옷은 다 챙겨서 왔다. 이내 봄이 찾아오겠지만 얇은 옷은 두 세벌식만 가방에 넣었고 나머지는 다 겨울옷이었다. 다른 옷들은 천천히 우편으로 받고 우선 파리의 겨울을 버틸 생각만 하자고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반년이 넘어선 지금 비로소 온전한 파리의 겨울을 나고 있다. 우선 생각보다 그렇게 막 춥지는 않다. 영하 10도 안팎을 오가는 한국의 겨울에 비하면 기온은 오히려 높은 편이다. 또 온몸을 시리게 만드는 찬바람도 상대적으로 덜 불었다. 물론 다리 위나, 큰 건물 사이 골목길에는 매서운 바람이 때론 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체감온도 폭락의 주범, 찬바람도 상대적으로 덜 몰아친다. 그런 점에서는 생각보다 견딜만하다.
다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겨울이 되니 도통 해가 뜨질 않는다. 어쩌다 하늘이 새파란 제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두툼한 구름이 하늘을 장악한다. 희한하게도 한밤중에는 되레 구름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날이 추워도 겨울의 파란 하늘을 볼 기회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얼마나 햇빛이 귀한지 며칠 전 하늘이 오래간만에 구름 한 점 없자 우리는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돼!" 하면서 외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떼가 몰려왔다.
또 다른 어려움은 이곳의 난방 시스템이다. 한국은 아파트든 주택이든 온돌 난방을 하면서 집안 전체가 후끈후끈하니 바닥에 눌어붙기 참 좋았다. 하지만 이곳은 대부분 외부 난방 시스템이다. 여기도 한국처럼 중앙난방인지, 개별난방인지 하는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외부에 있는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한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온기를 느끼려면 난방이 들어오고도 꽤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한국보다 최저기온은 높다 해도 겨울은 겨울인 법, 이곳에서 숙면을 취하려면 전기장판은 필수템이다. 그리고 다른 집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 라디에이터가 주로 생활하는 방에는 하나 있으면서 자그마한 부엌에까지 왜 설치해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방안 양쪽 끝에 하나씩 두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부엌이 그래도 집 바깥쪽이라 더 추워서 그런 건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파리에서도 참 늘어지기 좋다. 바로 전기장판이 깔린 침대 위, 그리고 이불 안. 아침에 일어날 때 보이는 잿빛 하늘과 약간의 찬 기운이 얼마나 움직이게 싫기 만드는지... 왜 그렇게 다들 시간만 나면 햇빛을 찾아 남쪽으로 놀러 가는지 알 거 같기도 하다. 겨울이 찾아오면서 그렇게 좋아라 하던(사실은 약간의 압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침 운동도 계속 넘기게 된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이게 나의 의지 문제가 아닌, 날씨가 그래서 그렇다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