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저당 잡혔던 지난날을 돌아보곤
나 다시 돌아갈래
-<박하사탕> 설경구
오늘 프랑스 대학원 지원 첫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취준생 시절 늘 받았던 답변이었다. '한정된 자리로 인해 아쉽게도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앞날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어디든 탈락을 알리는 메일의 매뉴얼은 비슷한가 보다.
당연히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막상 탈락 소식을 듣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 한편에서는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려고 한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현실은 아프다.
"그래, 원래 생각했던 학교는 아니잖아"
빠른 태세 전환에 나선다. 계속 씁쓸해하면서도 이를 이겨내기 위해, 혹은 외면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래도 돌이킬 수 없다. 다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
등록금이 비싸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는 곳이다. 막상 가서도 후회했을 거야 등등등. 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쓰라린 것은 이 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앞서 이야기했었던 영어의 늪에 빠졌었다는 점이다. "기껏 프랑스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하다니!"라는 역설을 느끼게 만들었던 그곳이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현실적으로 좀 더 그럴싸한 미래 설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뭐랄까, 그래도 다른 데에 비해 먹고 살 걱정은 덜 할 수 있지 않을 거 같았다고 할까?
어쨌든 이런 결과를 받고 나니 "대체 영어 공부는 왜 한 거지?! 그 시간에 프랑스어 공부를 했으면 다른 학교 지원에 골머리를 썩히진 않았을 텐데?!" 물론 이것도 핑계다. 다 결과론이고 가정일 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핑곗거리를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는 또 안도감을 느낀다. 즉, 내가 못나서 혹은 부족해서 지금 곤란에 처한 게 아니라 상황 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다. 마치 안 좋은 시험 결과를 알고 꾸중하는 엄마 아빠한테 "다른 애들처럼 학원을 보내줬으면 내가 시험을 망쳤겠어?!" 하는 거 같은.
불현듯 지난 1년, 혹은 수개월이 그냥 공중으로 날아간 거 같았다.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 첫발을 내딛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거 같은 절망감도 살짝 찾아왔다. 도대체 뭘 한 걸까?
근데 사람이란 간사한 것이 한편으론 또 안도감을 느낀다. "그래, 내가 직장도 때려치우고 여기까지 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잖아. 단지 좀 더 잘 먹고 살려는 게 아니라 하고 싶었던 것을 잠시나마 되찾고 싶었던 거잖아" 어떤 면에서는 이 역시 자기 위안에 불과하겠지만 너무나 큰 위안과 위로를 줬다. 잠시 잃어버렸던 내 바람과 희망을 다시 주워 담은 듯한 그것. 물론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프랑스어의 난관과 지난한 지원 과정을 거치며 또 다른 절망에 빠질 거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잘됐어!"라며 또다시 스스로 쓰다듬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좋은 학교다. 누군가에겐 있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권위있는 학교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흔들렸다. 다만 홍삼이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체질에 맞지 않으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에 열이 나는 등 부작용을 겪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런 것과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근데 나는 그것을 알면서 탐했고 결국은 체했다. 더욱 나쁜 것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탈이 났다는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왔다. 그건 단순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만은 아니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잠시 잃어버렸던, 현실의 벽 앞에 다시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겠다면서도 또 물러섰던 애초의 자리로 왔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저당 잡았던 순간들을 그토록 증오했으면서도 다시 그 길로 빠졌던 나를 인식했다. 그리고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왔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닌, 당장의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할 '지금'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와인 한 잔만 더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