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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Nov 24. 2018

그래도 담배가 있는 지옥을 택할까?

유학생 이비씨, 오늘도 금연을 다짐하다.

만약 죽고나서 지옥에라도 가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갱부>


프랑스에서 담배를 사려면 저렇게 <TABAC> 간판이 걸린 가게를 찾아야 한다.


파리는 나에게 천국이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흡연자, 나에게는 지상낙원이다.


프랑스에서도 실내에서는 금연인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식당이나 공중 시설물 같은 곳은 더할 것도 없다. 가끔 실내에서 전자담배(이곳에서는 물담배 같은 전자담배를 많이 피우는 듯)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불법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때까지는 피우고 보겠다"며 전자담배 증기를 내뿜는 사람들도 있다. 뻔뻔스러운 건지 담배에 넓은 아량을 보이는 문화 때문인 건지 여튼 그렇다.


야외에서는 사실상 자기 마음대로다. 한국은 야외라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을 일부 허용하는 반면, 이곳에서는 대부분이 흡연이고 약간의 공간은 금연구역을 해두는 거 같달까? 대부분의 카페와 식당은 인도에 떡하니 테이블과 의자를 깔아 둔다. 일종의 테라스. 아무튼 그곳에서는 10 센치 간격 옆 자리에 사람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햇볕이 뜨거운 한여름에는 외부 창문을 다 열어놔 담배연기가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양해를 구하는데 "당장 끊어요!"보다는 "연기가 들어오니 조금만 신경 써 주세요"가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일부 점심시간(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정도)에는 흡연을 못하게 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밖이라면 담배가 허용된다. 


'길빵'도 마찬가지다. 밖에 나가면 길을 걸어가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4~5살 정도 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가면서 다른 손에는 담배를 쥔 아빠, 유모차를 끌면서 담배를 피우는 엄마 등 그 부류도 다양하다. 한국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이곳에서는 일어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벤치 앉아 피우는 담배는 정말이지.. 좋다.


월드컵 결승전 날 파리는 그야말로 축제이자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이건 너무한데" 싶을 때가 있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당일, 당연히 파리 전체가 들썩 거렸다.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언제 이런 걸 다 보겠어?!" 하며 경기를 볼 수 있는 펍을 물색했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TV가 설치돼 있는데 펍이나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차하면 숙소로 돌아가 조촐하게 봐야 할 판이었다. 이제 발걸음을 돌려야 하나 싶을 찰나,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기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한 가게에서 외부에 스크린을 설치한 덕분에 멀리서나마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어떻게 헤집고 보면 볼 만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두 스크린에 시선을 두고 있던 와중, 사람들 무리 뒤로 한 10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애 둘이 있었다. 그런데 어색한 몸짓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보니 담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고 있었다. "헐". 순간 내가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보아도 담배였다. 어쩌다 주운 담배를 호기심에 피워보는 건지 어쨌든 딱 보기에는 이번이 첫 시도인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 싶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을 제지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물론 다들 축구경기에 집중하느라 그 상황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아무리 그래도 길 한가운데서 그것도 사람들로 가득 한 이곳에서 당당히 담배를 물고 있는 게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이 단편만으로 프랑스의 흡연문화를 일반화할 순 없다. 그 아이들이 너무나 당당했던 것일 수도 있고, 주위에 사람들도 다른 데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만큼 이 나라는 담배에 있어서는 굉장히 포용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담배값이 싼 것도 아니다. 유로로 약 8유로. 환율을 1300원으로 잡으면 한 갑에 만원이 넘는다. 한 프랑스 친구가 말하길 남녀 가릴 것 없이 흡연율이 절반이 넘기 때문에 정부에서 담배값을 높게 올린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부의 그런 의도가 크게 위력을 발휘하는 거 같지는 않다. 


비싼 담뱃값 때문인지 야외에서 담배를 피우다 보면 약간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경우가 많다. 바로 "담배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같은 경우를 종종 접한다. "미안 히지만 이거 돛대예요..^^;;"라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아닌 거 같은데? 거기 주머니에 뭐예요?"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들릴 듯 말 듯 욕을 하며 갈 때도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대부분은 거절에 익숙한지 스윽 지나간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다고, 본인 하기에 따라 싸게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 흔히 롤링 타바코로 알려진 담뱃잎과 필터, 종이를 각각 사서 직접 말아 피우는 것이다. 대게 롤링 타바코용 담뱃잎은 하나에 10유로 정도, 필터는 1유로대, 종이는 2유로대 해서 총 14유로 정도 나온다. 한 번에 목돈이 나가긴 하지만 본인이 피우는 양에 따라 갑으로 사는 것보다는 저렴할 수 있다. 또 일일이 마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귀찮은 일이라 흡연 횟수도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반면에 그런 이유로 다시 갑 담배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이것이 기본 한 세트.


불행인지 다행인지, 흡연자의 천국 파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곧 담배를 끊어야 한다. 사실 영어 시험이 끝나면 금연하기로 아내와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재시험에 봉착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어영부영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영어 시험도 끝을 냈고, 암만 롤링 타바코를 피운다 해도 꽤 많은 지출을 해야 하는 건 명백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에 산 롤링 타바코를 마지막으로 담배와는 작별 인사를 하기로 했다. 물론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랑수와즈 사강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불후의 한마디를 남겼지만, 반대로 "나는 나를 지킬 권리도 있다"도 될 테니까. 


다시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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