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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Nov 16. 2018

유학생 이비씨, 진지한 철학적 문제에 직면하다.

이곳에서의 삶을 가치 있게 판단하기.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 알베르 까뮈 <시지프 신화>


이곳도 완연한 가을이다. 한국처럼 단풍으로 확 물들진 않았지만.


아무리 인터넷으로 다 연결되는 세상이라도 먼 타지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한국 사정에 어두워진다. 포탈에 올라오는 기사들이나 사람들의 덧글을 보면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지만, 그럴 뿐이다. 실제로 그 일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는 몸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알고 보니 어제 수능 날이었더라. 재수생 출신이라 그런지 나에게 수능은 조금 감정적이다. 물론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겠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이 날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고 변한다. 그런 시기를 두 번 겪다 보니 수능시험장을 가는 학생들에게 괜히 더 마음이 가고, 수능 시작과 동시에 시작되는 교육부의 수능 브리핑을 관심 있게 봤다. 또 20여 년 풀어왔던 실타래가 전부 얽혀버렸다고 느꼈는지 다시 수능을 준비하겠다는 친구를 보며 괜스레 안타깝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의 선택과 앞날을 응원했지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난하고 침울한 것인지 잘 아니까. 그리고 그만큼 결과가 불확실하다는 것도 잘 아니까. 또 무엇보다도 그 친구를 한동안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아니까. 아무튼 나에겐 나름 의미가 있는 수능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 띄고 보니 그 날이었다. 뭔가 "변해가긴 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프랑스에도 한국의 수능 같은 게 있다. 바깔로레아(Le Baccalaureat) 줄여서 '박(Le Bac)'이라고 불리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무려 1808년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무려 200년 전부터 이런 게 있었다니. 나름 전통과 역사가 있는 전 국민 줄 세우기 아닌가!


바깔로레아 Série ES(아마도 상경계열?) 철학 영역에서 출제된 문제. '모든 진실은 확정적인가?' 그리고 '우리는 예술에 무감각(무관)할 수 있나?' 맞나..


사실 바깔로레아에 대해서 잘 알지는 않는다. 한국의 수능 같은 건데 그렇다고 모든 고동학교 학생들이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 대략 50%의 학생들만 본다던가? 그리고 일정 성적을 받으면 전국의 모든 대학의 응시자격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 '수리-가, 나'처럼 계열에 따라 문제가 다른 듯했다. 


근데 흔히 '그랑제꼴(Grandes Écoles)'로 불리는 소수정예 고등교육기관에 들어가려면 따로 '꽁꾸흐(Le Concours)라 불리는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 정도? 한국에도 잘 알려진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Po) 역시 그랑제꼴 중 하나라 프랑스 학생들이 들어가려면 따로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그랑제꼴을 꿈꾸는 학생들은 우리나라 수능 못지않게 준비하는 듯하다. 그만큼 비싸고 힘들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마음 편히 준비할 수 있다고 들었다.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 장벽을 세우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환경의 한계는 철저하게 존재하는 거 같달까? 왕의 목을 벤 프랑스 사람들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귀족 출신 이름이 알게 모르게 대접받는 게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 카드를 만들 때도 귀족의 성이라면 대우가 달라진다나. 여하튼 말이 샜다. 

*혹시라도 제가 잘못 알고 있다거나 첨언하실 게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다른 영역의 철학 문제.


여기 와 있는 동안 한 번에 바깔로레아가 있었다. 뭔가 한국처럼 수능날이라고 해서 사회 전체가 들썩거리는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뉴스를 보니 그날 시험 문항들이 나오긴 했다. 사실 출제 문항을 보고 조금 놀라웠다. 시험 영역 중에 '철학'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문제가 '욕망은 우리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표상인가?(Le désir est-il la marque de notre imperfection?)' '불공정을 겪는 것은 정의를 아는 데 필요한가?(Eprouver l'injustice, est-ce nécessaire pour savoir ce qui est juste?)' (*다분한 의역이라 혹시 뜻이 다르다면 부탁드립니다!ㅠㅠ) 


한국에서도 수시시험에서는 볼 듯한 문제긴 하지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철학이 나오고 저런 문항이 출제되는 게 놀랍긴 했다. 물론 Série S(우리나라로 치면 이과? Série Scientifique)라는 영역에 응시한 학생들만 풀겠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이 영역에 시험을 보는 전국의 학생들은 이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고 또 해봤다는 걸 테니까. 달리 생각하면 공정성과 객관성이 핵심이어야 할 텐데 저런 문제의 성적을 어떻게 계량화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긴 한다. 만약 수능에서 저런 문제가 나왔다고 하면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상상도 안된다. 물론 한국의 수능과 바깔로레아가 똑같다고 말하기 어려우니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수능 출신이다 보니 거기에 대입해 생각하게 된다. 그냥 "와 어떻게 저런 게 문제로 나올까?!"만 연발했다. 


과거 고3으로써 이어서 재수생으로 수능을 봤던 순간이 새롭게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무엇을 위해서 그랬던 걸까 질문이 떠오르지만 사실 "이것 때문이다!"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 덕에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하늘에 떠오를 열기구를 찍고 싶었는데 어느 새 내려오고 말았다.


지금 다시 비슷한 순간에 처해 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막 대학원 석사 과정 진학 준비가 시작이다. 아직도 부족한 프랑스어지만 학비가 저렴한(국립대는 1년에 약 100유로 정도의 등록금만 내면 된다) 국립대를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유효한 학벌사회에서 그나마 이름값있는 그랑제꼴(이에 대해선 다른 포스트에서 좀 더 설명하겠다)을 응시할 것인가? 당장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준비하는 어려움에서부터 시작된 짜증과 고난은 난 왜 여기 왔고, 무엇을 이루려고 했던 걸까? 하는 본질적 의문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그런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왔는 데 다시 똑같은 창살에 둘러 쌓인 기분이랄까? 약간 당장의 괴로움을 회피하고자 하는 반응 같기도 하다.


아무튼 어쩌다 저쩌다 보니 석사 프로그램 지원을 준비하면서 생각도 못한 진지한 철학적 질문을 맞닥뜨렸다. 지금 이 순간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문제, 어떻게 그렇게 만들 것인지 혹은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이젠 프랑스 파리 이곳을, 한국에서의 도망쳐 온 도피처 혹은 해방구가 아닌 나의 진짜 현실세계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 이제 이곳을 나의 현실의 무대로 인정하자. 그리고 자살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물론 단어의 뜻 그대로의 자살이 아니라 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할 것인지 다시 되새겨볼 때인 듯하다. 그전에 자소서부터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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