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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Nov 14. 2018

유학생 이비씨, 오늘은 뭐 먹지?

그리고 내일은 뭐 먹지?

"밥은 먹고 다니냐?"

- 송강호 <살인의 추억>


그래도 밥솥은 있어야 한다며 미국에서 공부 중인 친구가 선물을 보내줬다.


파스타, 스테이크, 빵 등 양식 혹은 유럽식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 아니 즐길 뿐 아니라 매우 매우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습관 중 하나는 파스타를 다 먹고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에 발라 먹을 때다. "설거지하냐?"며 핀잔을 줄 정도로 서양식 애호가다.


* 아내의 주석: 접시에 빵을 '꾹꾹' 눌러, 소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수세미로 그릇 닦듯 닦아먹는 것을 싫어하는 거다. 그냥 쿡쿡 찍어먹는 정도면 괜찮은데 왜 소스를 다아아아 먹냐구 >.<!!! 보통 소스에는 나트륨이 많이 남아있으니깐 걱정하는 거라구 >.<!!!


한식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순댓국과 뼈해장국은... 말해서 뭣하랴.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수제비와 칼국수 같은 탄수화물 폭탄에도 당당하게 내 몸을 던진다. 매운탕을 먹을 때는 최소 수제비 사리는 넣어야 하며, 곱창을 먹고 나서는 밥을 비비는 게 순리 아닌가요? 하며 자문한다. 소주?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주위 사람들이(나 스스로도) 가장 많이 한 걱정 중 하나는 "먹는 거 괜찮겠니?"였다. 아무리 서양식을 즐긴다 한들 매일 먹어야 하는 것과 어쩌다 먹는 것은 완전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늘 먹을 수 있는 것들, 혹은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못 먹게 되는 거다. 내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아예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 그건 나도 살짝 걱정이 됐다.


소고기 가득한 포.


그래도 다행인 건 한식을 먹고 싶어 못 견디겠다 싶을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래도 파리인지라 한식당이 꽤 있기도 하고(물론 한국과 비교해 비싼 건 당연) 애초에 마음을 놓고 오니 크게 그립지는 않다. 요리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기도 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알아서 잘해 먹는다. 닭갈비는 기본이고 비빔밥과 김치찌개, 제육볶음 정도는 가볍게 한다(맛과는 별개로). 이렇게 말하고 보니 한식을 그리워할 시간조차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어떤 특정 음식보다는 그것과 관련된 맥락에서 더 큰 동공 지진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을 때 비 오는 날 특히 삼선짬뽕을 먹는 걸 좋아했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짬뽕 곱빼기를 시켜 한 판 시원하게 벌이고 뒤 찬밥을 만다. 만약 집에 소주가 있다면 금상첨화. 혹은 일요일 오전 한잠 늘어지게 나고 난 뒤 밥 해 먹기는 귀찮고 배달시키기는 뭔가 애매할 때 종종 김치 부침개를 부쳐 먹곤 했다. 살짝 신김치를 송송 썰고 냉동실에 항상 보관돼 있는 오징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어 반죽한 뒤, 꼭 두 판을 부친다. 집 안 가득 기름 냄새가 던질 때 "오늘은 내가 김치전 요리사"를 외쳤다.


아님 나름 산뜻한 보분?!


비가 오거나 주말 오전 집안에 가만히 있을 그때 이런 맥락들이 순간순간 그립다. 그리곤 잠시 좌절한다. 이 순간들을 완성시켜줄 짬뽕과 김치부침개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문득 슬프다. 뭔가 집중하며 일할 때는 찐만두를 먹어야 하는데...


유학 혹은 해외생활을 그나마 쉽게 적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와 같은 순간의 그리움 혹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대체를 빨리 찾는 것 같다. 나에게 있어 파리의 짬뽕은 베트남 쌀국수이며(전 프랑스 식민지여서 그런지 베트남 요릿집이 꽤 많은 데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일품이다) 김치부침개는 피자로 바뀌었다. 물론 그때처럼 손쉽고 저렴하지는 않지만 결코 채울 수 없는 갈증으로 남기기보단 우선 채울 수 있는, 그렇게 또 다른 맥락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곳에 자리를 잡는 과정 중 하나인 듯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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