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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Dec 14. 2018

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파리에서

우리의 결혼식 이야기

"헐. 어떻게 헷갈릴 수가 있어?!"


우리는 결혼식을 두 번 올렸다. 원래는 한 번만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한 번 더 하게 됐다. 어디서 듣기로 결혼식은 아내의 고향에서 올리는 게 관례라고 들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직장은 서울에서 잠깐 다녔다가 얼마 안 있어 부산으로 옮겨 갔다. 하지만 고향은 대구였고 처가와 아내의 친지분들도 주로 대구에 계셨다. 우리 부모님도 대구(정확히 말하면 고령군)에 있는 데다 우리 쪽 친인척도 대부분 그 근방에 있었다. 어떤 면에선 대구가 식을 올리기에는 가장 적합했다.


결혼 기념일을 맞아 집에서 성찬을 준비했다. 전식으로 새울브로콜리샐러드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우리는 서울에서 하고 싶었다. 결혼식은 부모님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주인공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시간을 함께 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캠퍼스 커플로 시작하다 보니 우리 주위에는 항상 교집합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았다. 그리고 8년 간 그리고 수년간 '롱디'를 하면서 위기 아닌 위기가 있었을 때 우리를 지탱해준 것도 그들이었다. 당연히 부모님과 친인척, 가족들도 중요하지만 우리는(특히 나는) 친구들과 함께 소소하게나마 정말 흥겨운 파티를 열고 싶었다. 아내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버스 대절해서 같이 올라오면 좋지 않을까?! 뭔가 여행 가는 거 같기도 하잖아?! 하하하^^::" 하며 서울로 밀어붙였다.


문제가 생겼다. 서울에서 식을 올리고 양가 부모님과 친척분들은 버스로 올라오기로 했다. 하지만 고령이신 데다 몸도 불편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에게 장시간의 버스 여정은 고역이었을 테다. 또 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나오셔야 하는 데다 끝나자마자 바로 대구로 가셔야 했다. 현실적으로는 어느 분들까지 초대해서 버스로 안내해드려야 할지 그래서 총 몇 대의 버스를 빌려야 할지 계산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께서는 차라리 대구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으셨다. 상황이 그래야 했다. 부모님들도 처음에는 서울에 하는 것에 찬성하셨다. 하지만 내심 막내딸과 막내아들의 결혼, 말하자면 집안의 마지막 결혼식을 최대한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냥 우리 두 번 할까?!"


우리도 참 포기를 몰랐다. 우리가 그리며 한껏 부풀어져 있던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정말 말 그대로 파티에 대한 열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혼식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경건하고 장엄한 분위기, 그리고 약간의 눈물 코드를 배치하는 그런 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대한은 가족들과 함께는 대구에서, 친구들과는 서울에서 따로 식을 올리는 거였다.


본식은 오븐에 1시간을 푹 익한 통삼겹구이와 감자퓨레 그리고 양파와 브로콜리 구이!


당연히 손도 많이 가고 예산도 치솟았다. 그래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아내는 대구와 서울에 있는 예식장 등을 쥐 잡듯이 알아봤다. 예식 30분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식을 치르는 일반 예식장은 배제했다. 작은 공간이나마 우리끼리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면서도 그래도 분위기는 '잇'한 곳을 찾고 또 찾고 찾아가고 또 연락했다. 여기에 아내는 각 식장의 예상 비용을 꼼꼼히 비교해가며 대구와 서울 각각 예식장을 예약했다. 그래도 대구에서는 어르신들이 많이 참석할 예정이라 좀 더 일반적인 식을 치르는 곳으로 했다. 그리고 밥이 맛있는 곳이었다. 이건 정말 중요하니까. 서울에서는 '하우스 웨딩'으로 진행했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소소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번잡하지도 않으며 우리끼리의 시간을 즐기길 기대하며.


근데 또 문제가 생겼다. 두 번 하는 건 좋은 데 그럼 일정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일주일 간격을 두는 게 어떨까 싶었다. 예정에 없던 또 다른 식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촉박해지면서 딱 맞는 식장을 물색하기가 어려웠다. 메이크업이나 우리가 서울 대구를 오가는 시간적 어려움도 있었다.


"그럼 신혼여행은 언제 가지?"


고기가... 진짜... 너무 맛있었다... 아내도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한동안은 파리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될 거 같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하니 연이어 문제가 생겼다. 일주일의 간격을 두자니 신혼여행 일정 잡기가 애매해졌다. 식을 두 번 치르는 거에는 생각 못한 장점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회사 사람들을 따로 초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회사 내에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 정이 가는 사람, 정말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개는 형식적인 관계였다. 그냥 상사여서, 같은 부서여서, 왠지 안 부르면 안 될 거 같아서의 류가 훨씬 많았다. 이들을 서울이 아닌 대구로 부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었다. 또 솔직히 대구에 오기 어렵더라고 축의금은 챙길 수 있을 것이며 그럼 식비도 아끼니 왠지 "일석이조네?!" 하는 알량한 이기심도 들었다. 다만 그럼 '공식적'인 식을 올리기 전에 신혼여행을 가거나, 혹은 결혼식을 하고 나서 일주일 후에 신혼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아무리 "비행기 일정이 그래서요" 라거나 "저렴한 일정으로 잡아봤어요" 하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어서 진행하는 거였다.


그렇게 토요일에는 대구에서, 다음날 일요일은 서울에서 식을 하기로 했다. 생각 이상으로 일정이 빡빡했다. 식을 한 번 치르는 것만 해도 혼이 빠져나가는데 그걸 두 번 연속으로 하려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토요일 새벽부터 메이크업은 물론 부모님 동선을 챙겨야 했다. 또 오는 손님들과 일일이 인사한 뒤 얼빠진 상태로 식을 진행하고(신랑 입장을 하는 데 내 걸음걸이가 참 로봇 같다고 하더라). 그래도 식은 정말 좋았다. 주례 없이 우리 아빠가 '새 부부에게 하는 당부의 말씀'을 하고 장인어른께서 색소폰을 연주하셨다. 이때가 약간 고비였는데 눈물이 많은 아내가 이 순간 울컥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고 그럼 우리가 준비한 '너의 의미' 합창도 꺼이꺼이 일색이 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아내는 위기를 잘 참고 넘겼다. 이후에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손님들과 인사했다. 누가 왔는지 무슨 덕담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선 바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래도 '첫날밤'인데 분위기도 잡고 좋은 술도 한 잔 하고 앞으로의 우리의 삶도 그려보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또 다른 식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편히 뭘 하지도 못했다. 둘 다 우선은 "내일도 잘 하자"뿐이었다. 


디저트는 아내가 손수 만든 호두 브라우니. 달달하니 아주 그냥...! 그래도 다음엔 밀가루를 조금 덜 넣어야 겠다.


다음날도 기본 일정은 같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다. 근데 "헉" 일이 생겼다. 혹시나 결혼반지를 잃어버릴까 봐 호텔 방에 있는 테이블 위에 뒀는데 그걸 깜빡하고 두고 나왔다. 그나마 다행으로 아내가 이를 기억했지만 이미 아내는 한창 메이크업 중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밖에는 비도 오고 메이크업샵이 어느 골목 구석에 잇는지라 택시도 안 보였다. 어떻게든 택시를 구해 잡아 타고는 호텔에 연락해 "혹시 그 방에 반지 없던가요?!"하고 물었다. 들려오는 대답은 "네 있습니다. 지금 찾으러 오실 수 있으신가요?"였다. "그럼요!!"


기대 안 한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고 다시 식을 올렸다. 본식 전에는 우리가 직접 선별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파리에 가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일부러 프랑스 음악 위주로 선정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당연히 주례는 없었고 이미 서로가 서로의 친구였고 우리끼리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하우스 파티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같이 손을 잡고 입장했다. 그리고는 해외에 있는 친구들이 보낸 축전을 틀며 한층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우리가 이렇게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만큼 여러분들에게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고 싶어요"라며 커플 매칭에 나섰다. 남녀 솔로 하객들이 자기의 번호를 적어 내면 그걸 뽑아 상품을 주며 "한 번 잘해보세요"하는 거였다. 다행히 2대 2 구성이 이뤄지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나름 성공리에 진행됐다. 근데 정작 커플은 여기서 나오지 않았다. 이때 나온 아내의 친구를 보고 맘에 든 또 다른 아내의 친구가 관심을 드러냈는데 이후 둘이 커플이 됐다. 또 하객들이 들어올 때 우리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쓰는 게 있었는데 이 중 몇 개를 뽑아 읽고 경품도 줬다. 다행히 궂은 날씨도 차차 개었고 약간의 송년회 같으면서도 동창회 같은 시간이 잘 마무리됐다.


브라우니의 영롱한 단면.


그리고 어느덧 딱 1년이 지났다. 12월이 되자 나는 아내에게 "이제 곧 우리 결혼기념일이네?! 8일, 9일 두 번 다 파티 열면 되나??!"라며 한껏 기대에 차 말했더니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헐... 우리 9일, 10일이거든?!"이라고 했다. 겸연쩍어진 나는 "아핫?! 그... 그랬구나! 아 맞네!" 라며 머리를 긁었다.


결혼한 지 1년, 파리에 온 지 10개월. 정말 시간은 너무 빠르다. 그렇게 또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덧 2년, 3년 10년이 돼 있을 거 같고. 사실 그동안 뭐했냐고 물으면 "음... 영어시험...?"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도 확실한 건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있었고 또 앞으로도 같이 있을 거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바로 딱 떠오르는 이벤트 같은 건 없더라도 따뜻한 감정이 충만한 시간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어드벤트 캘린더. 크리스마스 간식 달력이라고 할까? 프랑스에는 11월 즈음부터 이렇게 날마다 하루씩 뜯어 안에 들어 있는 케이크나 초콜릿, 쿠키 등을 뽑아 먹는 걸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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