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멸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비 Jul 02. 2019

0

두 엄마가 마주 섰다. 앙 다문 입과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와 빨갛게 충혈된 눈, 살짝 쥐어 쥔 양 손, 땅에 뿌리를 내린 듯 굳은 다리, 두 엄마는 똑같은 작가가 만든 석고상인 듯 미묘하게 닮았다. 이들의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면 누가 누구의 엄마인 지도 헷갈린다.



둘은 옷 차림새로 서로를 구분했다. 한 엄마는 노란 양말에 검은 상복을, 여기에 손길을 못 받은 화초처럼 드문드문 삐져나온 앞머리는 더욱 초라해 보였다. 되레 가지런히 넘긴 뒷머리들이 부자연스러웠다. 다른 엄마는 보풀이 일어난 회색 울 코트에 안에 기다란 검정 원피스를 입었다. 상대적으로 이 엄마는 차림새가 깔끔했다. 한 가닥도 튀어나오지 않은 정돈된 머리는 이 엄마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일까? 어쨌든 이로써 어느 서울 내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장례식의 상주가 누구이고 그가 맞이한 조문객이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발인을 앞둔 3일째 자정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이 날의 주인공이 눕힌 작은 방 바로 옆에 조문객들을 위한 테이블 10개가 있었다. 그중 2개는 각각 40대 중반의 남녀와 5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약간의 슬픔과 애도가 담긴 침묵, 하지만 이들의 침묵은 입안에 든 머리 고기와 육개장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50대의 한 여자는 입을 오물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눈가를 적셨다. 그 나름의 애도법이었다. 이 날의 주인공이 20대 후반인 걸로 봐서 이들은 가깝거나 먼 친척 정도인 거 같다. 아니면 그 주인공이나 검은 상복의 엄마의 이웃 인지도 모른다.


검정 원피스의 엄마 그들 옆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그녀를 벽 쪽 자리로 이끌었지만 그녀는 허리를 곧곧이 새운 채 상주가 있는 건너방만 바라봤다. 장례식장의 도우미들이 "식사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침묵에 익숙한 도우미들은 으레 그러는 것처럼 새빨간 고추기름이 뜬 육개장과 밥 한 공기, 각종 전과 떡 등을 그녀 앞 테이블에 차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허리를 빳빳하게 새웠다.



긴 침묵. 그녀 앞에 털썩 주저앉듯 앉은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소주잔 하나를 가져오고는 벌컥 따랐다. 술잔을 든 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곤 한 입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늦은 밤, 저녁 끼지를 거른 채 장례식장에 온 그의 장기를 따라 뜨거운 소주 기운이 흘러내려갔다. 트림. 그는 재차 소주잔을 채우며 계속 이어지는 침묵을 깼다.


"엄마, 이제 만족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