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메타인지는 안녕하신가요?

겸손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이다.

by 명천궐

필연적인 겸손과의 괴리

강사, 교사, 목사 등등 사람들 앞에 서서 정보를 알려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분야에서 청자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게 지속되면 결국 그 분야에서 안 겸손 해진다. 심하면 그 사람 자체가 안 겸손 해지게 된다.


물론 사람이 반드시 겸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건 겸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우위에 있지 않는 사람이 자꾸 우위라고 착각, 망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외부세계를 자꾸 왜곡해서 본다면 정서와 뇌까지 왜곡되기 마련이다.


나는 어머니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15살 전까지의 인간은 판단능력이 달려서 짐승 수준이기에 엄마가 대신 결정해야 했다. 15살 후 인간은 나름의 주체성에 생기고 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조금씩 자녀의 주체적 결단의 규모가 커지고, 자녀가 20살 후가 되면 완전히 주체적인 결단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중대한 기능이 하나 제거되는 것이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익숙히 어머니는 자녀의 결단 기회를 (강제로) 위탁받아왔기 때문에 어머니는 여전히 관습적으로 대신 결단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자녀는 교사, 강사, 부모님으로부터 약탈된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늘 심판이었다. 거실에 물이 쏟아진 걸 본 어머니는 나와 형을 의심한다. 나는 내가 안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나 역시 어머니와 형을 의심한다. 이때 어머니는 본인을 제멋대로 용의 선상에서 강제로 뺀다. 집에 있던 세 명이 모두 본인이 아니라 하면, 모두 후보이며 용의자가 되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둘이서 알아서 쏟아진 물을 닦으라 하는 것이다. 플레이어 세 명이서 치워야 이치에 맞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자의적으로 외로 빠지고 근거 없이 심판역할을 한다.


왜 엄마는 항상 예외였나?

김경일 심리학 교수의 말 인용하자면, 본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2Jpyi7f8FK8?si=Y565NOyUFUO1gYGm

예시 상황을 제시하겠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7살 정도의 자녀들이 티브이를 보느라 아버지를 반기지 않는다. 이때 아버지는 마음이 상했다. 그 후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자녀의 입에서 밥알이 튀었다. 아버지는 이때 말한다 "어디 밥상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먹어!". 하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왜 이런 개소리를 했냐 하면 자신의 마음이 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https://youtu.be/2Jpyi7f8FK8?si=Y565NOyUFUO1gYGm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자녀가 아버지를 반기지 않을 때 "아무도 반기지 않으니까 속상해"라고 말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부모가 스스로 자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 착각하기에 속상해하는 모습이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도 본인이 자녀보다 우월하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물을 쏟았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 자녀와 동등한 조건이기에 이에 마음이 상했고, 두 자녀에게 혐의를 전가하는 개소리를 했던 것이다.


메타인지를 하라.

이런 무지성 개소리를 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메타인지를 해야 한다.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학습을 통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될 때 그 생각의 시선은 자신의 내부로 수렴하고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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