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고, 문제없다고, 축하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 물건을 잘 부순다. 어머니는 그런 어린 내게 부정적인 단어 대신에 '신의 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안경, 핸드폰, 선풍기, 심지어 의자까지 전부 부수고 다닌다. 처음에는 이 능력을 고치려 했으나 실수는 교정할 수 없기에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실수에 관대하다. 내가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실수하지 마"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의 모순을 확실히 제시할 수 있다. (사기를 증진하고 긴장감을 주고 격려하는 차원에서의 "실수하지 마"는 문제가 없다.) 인간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데 실수하지 말란 말이 성립 가능한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실수하지 말란 말은 마치 "중력아 없어져라"라는 말과 100% 일치한다. 우리는 중력이 왜 있는지도 모르고 없앨 수도 없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판단할 능력이 있는 주체적 자아의 실수는 자아가 자아로써 자아인 명확한 근거고, 실수는 그 자체로 자아에 대한 모든 것이다.
나는 내 신의 손 능력을 앞으로 영원히 고칠 생각이 없다. 이건 노력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실수를 없애는 것은 중력을 없애는 것과 같다. 불가능 하단 소리다. 대신에, 나는 내 고유한 장점, 개성, 재능을 향상해서 부서진 안경을 언제든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을 정도의 부를 가지면 된다.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존이 상하지 않고 굳건한 것이다.
실수한 사람이 불안해하며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 왜인지 미안해진다. 그 사람에게 달려가 꽈악 격하게 끌어안아주고 싶다. 잘했다고, 문제없다고, 축하한다고. 실수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영혼을 갉아 먹히지 않게 해주고 싶다. 실수는 비판의 대상이 아닌 비의도적 무의식의 개념이기에 실수를 비판하는 사람은 모순적인 것이다. 실수에 대한 비판은 마치 중력이 너무 크니 조정이 필요하다는 발언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