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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루탈리스트>에 대한 이야기

거울 같았던 영화

by 마잌

지난 주말 드디어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봤다. 예전부터 보려고 했었는데 러닝타임이 3시간 반이나 되는 걸 보고 오랜 시간 동안 각 잡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 보니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이렇게 긴 영화를 본 건 작년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브루탈리스트>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진행도 그리 늘어지지 않고, 흡입력과 몰입감이 좋아서 영화가 엄청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2025년 최고의 영화로 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개인적으로 2025년은 국내외 모두 영화가 흉작이었던 한 해로 느껴지는데, (물론 내 별점에는 권위라곤 1도 없지만) 나는 <브루탈리스트>에 올해 개인적 최고점인 4.74를 주고 싶다. 요새 장난으로 주위에 소수점 2자리까지 별점 매기는 걸 밀고 있는데, 0.01 차이로 (반올림 가정) 5점을 아슬아슬하게 놓쳤지만, 4.5점 대 영화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실 처음에는 4.53을 줬었는데, 계속 영화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점수가 더 올랐다).


어쨌든 이동진 평론가도 이 영화에 보기 드문 5점 만점을 주며 올해 외국 영화 베스트 10에서 2위로 선정하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이동진 평론가와 의견이 일치하는 작품이 나왔다. 예전에 여러 번 나의 글에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오랜 팬이고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한줄평과 별점을 미리 꼭 확인하는 편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2022년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만점을 준 것을 시작으로, 2023년에 역시 만점을 준 <애프터썬> 등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올해 이동진 평론가가 호평한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와 2025년 최고의 한국 영화로 뽑은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도 나는 기대 이하였다. 특히 <굿뉴스>에 남긴 “이런 한국영화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라는 극찬에 가까운 한줄평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두 작품 모두 3점 이상 주기 어려울 것 같다).

이동진 평론가와 헤어질 결심

요새 내가 자꾸 이동진 평론가가 높은 점수를 준 작품들을 혹평하다 보니 주위에서 그렇게 좋아하던 이동진 평론가와 “헤어질 결심”을 한 게 아니냐고 놀리곤 하는데, 나는 아직도 심심하면 이동진 평론가의 <헤어질 결심> 리뷰를 다시 볼 정도로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평생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기회에 예전에 정성일 평론가가 앞서 언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 대해 남긴 아주 멋진 한줄평을 오마쥬 해서 이동진 평론가와 <헤어질 결심>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표현해 보자면,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도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를 보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헤어질 결심>을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직도 영화의 기적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 (이동진 별 5개)

늘 그러듯이 오늘도 메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엉뚱한 이야기만 한참 늘어놓았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오랜만에 동진이 형(?)과 의견이 일치해서 기뻤다는 이야기이다. 하튼 드디어 <브루탈리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야 늘 뛰어나고 이 작품으로 그의 두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 “해리슨 밴 뷰런(이하 "밴 뷰런")”이었다. 사실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은 "라즐로"라는 천재 예술가의 고뇌, 예를 들어 그가 건축이라는 예술을 대하는 완벽주의적인 태도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강박과 스트레스, 그리고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겪었던 주류 사회의 배척이나 경제적 어려움 같은 이민자의 설움이라 보는데,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영화를 볼 때 내가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캐릭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됐던 캐릭터는 단연 "밴 뷰런"이었다.


여기서 잠깐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라즐로"는 (비록 "밴 뷰런"으로부터 구두닦이 같은 영어를 쓴다고 조롱을 당하긴 하지만) 일단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영어로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미국에서 꽤나 영향력이 강한 유태인 계였기 때문에, 영어도 못하고 외모도 더 상이해 인종차별도 더 심하게 받은 아시아 계 이민 1세대들보다는 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새삼 백 년도 더 전에 맨땅에 헤딩하듯 미국으로 건너간 아시아 계 이민 1세대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영화 같은 유태인 계 이민자들에 대한 영화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단골 소재인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에 대한 영화는 많아도 아시아 계 이민자들의 미국에서의 삶과 고생을 제대로 다룬 영화는 아직 만들어진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쉬운데, 언젠가 내가 직접 이런 영화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고 싶다.


다시 "밴 뷰런"으로 돌아가자면,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성공하고 지적 수준이 높아 보이는 전형적인 (어찌 보면 단지 미국에 좀 더 일찍 와서 먼저 자리를 잡은 것뿐인) 백인 주류 사회의 상징 그 자체인 인물이다. "밴 뷰런"이라는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의 성을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첫 미국 태생, 즉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미국이라는 신생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난 첫 대통령이었던 "마틴 밴 뷰런"에서 따온 것은 분명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려는 의도라 본다. 어쨌든 "밴 뷰런"이란 인물은 사업수완은 제법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적 소양이나 지적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허영심과 과시욕이 있다. 평생 다 마시지도 못할 만큼의 고급 마데이라 와인을 셀러에 쟁여놓고, 아마 평생 한 번 읽어보지도 않았을 듯한 희귀 초판본 책들로만 크고 근사한 서재를 가득 채우며, 심지어 나비까지 수집한다.


특히 "라즐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미 서재 자체는 이후 건축 잡지에 소개된 모습과 거의 비슷하게 완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단함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라즐로”를 쥐 잡듯이 잡다가, 나중에 그 진가를 알아보는 고상하고 수준 높은 상류층 지인들이 칭찬하니 그제서야 180도 돌변해서 “라즐로”를 갑자기 추앙하다시피 하는 모습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데,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사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예를 들자면, 어떤 영화를 보고 나서 노잼 졸작이라고 혹평했었는데, 나중에 이동진 평론가가 그 영화에 별 4개를 줬다는 걸 알게 난 후에 다시 보니 왠지 그럴듯한 작품 같이 느껴졌다든지? 나는 가끔 있다.


하튼 "라즐로"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밴 뷰런"의 허세와 과시욕이 건축 쪽으로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문화센터 공사를 시작하면서 어떤 때는 라즐로”를 존중하고, 경외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게 평범한 사람이 본인이 선망하는 분야에서 본인이 너무나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천재들을 마주치면 나오는 일종의 방어기제라 생각하는데, 약간 나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뒀던 내가 싫어하는 나의 안 좋은 모습이 거울에 비춰진 느낌이 들어서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좀 불편했다.


나도 솔직히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선망하고,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환경이 부러우면서도 온전히 인정하기는 싫고, 뭔가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밴 뷰런”의 그런 태도와 행동이 이해가 됐다. 그렇다고 그런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밴 뷰런”처럼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건 당연히 한 번도 상상조차 안 해봤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예술적 결핍이 얼마나 깊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쓰러웠다.


살짝 용기를 내어 고백해 보자면, 회사에서 음악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나는 주위에 음악에 정말 진심이고 음악을 정말 잘 아는 동료들이 많은데,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진짜 스포티파이에 올라와 있는 모든 아티스트들을 다 알고, 세상에 안 들어본 노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은근히 주눅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정작 나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법무 분야에서는 나보다 법을 잘 알고, 의견서를 잘 쓰거나 법정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변호사들한테는 단 한 번도 자격지심을 느껴본 적이 없다 (사실 전혀 부럽지도, 멋있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나보다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영화나 미술 등에 대해서 잘 알고, 글도 잘 쓰고, 말도 재밌게 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끼는데, 영화를 보며 “밴 뷰런”이나 나나 결국 그 정도의 차이일 뿐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예전에 나와 같은 사내 변호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유퀴즈>에 나온 걸 봤을 때, 바로 “뭐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저 사람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하면서 옹졸한 자격지심에 빠져 그들을 폄하하고, 어떻게든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부분을 찾아내서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려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그리고 정작 나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마주치면 폄하나 비난을 할 생각조차도 못하면서, 내가 비벼볼 만한(?),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발현되는 자격지심이라는 게 더 싫다.


나는 나 스스로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인간 자체가 멋진 사람, 특히 타고난 예술인들과 천재들을 선망하고 동경하는 것 같은데, 재능에 대한 욕심과 부러움은 가득하면서, 내가 갖지 못한, 혹은 나와는 다르지만 충분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줄도, 현실과 결과에 승복할 줄도 모르는 참 못난 사람인 거 같다. 아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너무 최악인데? 하하.


갑자기 글이 너무 고해생사로 변질된 것 같아서 다시 영화 이야기로 좀 돌아갈 겸 내 브런치에서는 늘 빠질 수 없는 영어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인 “The Brutalist”는 주인공인 “라즐로”가 아니라 “밴 뷰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Brutalist"라는 제목을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 양식을 추구하는 건축가인 "라즐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긴 하지만, 나의 확대해석(?)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brutal"이라는 단어가 영미권에서 주로 사용되는 맥락 때문인데, 영미권에서는 뭔가 "끔찍한" 강간, 구타, 폭행, 학대 같은 사건을 보도할 때 거의 항상 "brutally raped", "brutally assaulted" 이런 식으로 쓰는데,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라즐로"는 "밴 뷰런"에게 끔찍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 단순하지만 이게 내가 "The Brutalist"라는 제목이 중의적인 제목이라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다.

진정한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 계열의 건축가 "라즐로"인가, 아니면 미국 주류 사회를 상징하는 "밴 뷰런"인가?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보다는 그래도 좀 더 추상적인데,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라즐로"가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꽤 오랫동안,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 등, 이민자의 시련과 고난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영화임을 명확히 알리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라즐로"라는 이민자가 미국에 와서 주류 사회로부터 속절없이, 무자비하게 당하는 고생의 서사라고 요약할 수도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밴 뷰런"은 "라즐로"에게 시련과 고난을 주는, 속된 말로 그를 "fuck over" 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미국 주류 사회의 상징 그 자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라즐로"를 비유적으로 (figuratively), 그리고 문자 그대로 (literally) 유린하는 "밴 뷰런"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Brutalist"가 아닐까 싶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보고 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가 참 맘에 든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볼 때 색감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약간 내가 좋아하는 <대부> 시리즈와 비슷한 색감과 느낌이 나서 좋았다. 거기다 이 영화는 포스터들도 뭔가 다 감각 있고 멋진 것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영화의 두 핵심 주제인 건축과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미국 국기를 합친 아래 버전이 특히 느낌 있고 좋았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건 힘들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얻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건축에 대해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 문외한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약간 건축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 이모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일본의 아키타 현립 미술관, 그리고 (지금 찾아보니) 브루탈리즘의 끝판왕이라 불리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공간"으로도 꼽힌다는 샌디에이고의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에 여행을 간 생각이 나는데, 그때는 나도 마치 "라즐로"의 서재를 보고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밴 뷰런"처럼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다시 가게 된다면 뭔가 느끼는 게 다를 것 같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고 봐도 그냥 멋지긴 하다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La Jolla, CA)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겪은 신기한 경험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면, 나는 거의 매일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한강로동 주민센터 앞을 걸어 다니는데, 지금까지는 매일 그 빌딩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근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다시 자세히 보니 빌딩의 콘크리트 외벽이 그대로 노출된 정육면체 형태인 게 뭔가 브루탈리즘 계열 같은 거다. 그래서 한번 검색해 보니 역시 데이비드 치퍼필드라는 해외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무려 400억 원이나 들여서 지은 건축물이었다. 정말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이걸 알아챈 나 스스로에게 살짝 뿌듯했는데, 이런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은 언제나 환영이다.

예전부터 일개(?) 동 주민센터치고는 뭔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나저나 이 글은 원래 누군가와 이 영화 감상평을 공유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건데, 정작 다 쓰고 나니까 너무 자기혐오적이고 부끄러운 내용이 많아서 맨 정신에는 도저히 못 보여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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