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이 가진 힘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봤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드라마라 나도 계약서를 몇 개 검토했었는데, 그래서 본건 아니고 순전히 박지현 배우 때문에 봤다. 나는 예전부터 박지현 배우를 엄청 좋아했는데, 박지현 배우 특유의 뭔가 차갑고 도도해 보이면서도 우아하고 지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고, 새하얀 피부에 팜므파탈 역할에 잘 어울릴 듯한 비주얼도 내 이상형에 가깝다 (TMI).
어쨌든 마지막 15회까지 정주행을 완료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이 좋은 작품에 내 이름도 크레딧에 올라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였다. 예전에 몇 번 넷플 작품에 내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간 적이 있긴 하지만, <은중과 상연>만큼 감명 깊게 본, 그리고 크레딧에 올라가지 못한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느끼게 할 만한 작품은 없었다. 사실 나만해도 넷플에서 뭐 보고 나면 크레딧 뜨기도 전에 다음 편으로 넘기거나 종료를 눌러버리는 편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크레딧에 올라가는 게 뭘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작품을 실제로 기획, 제작, 촬영, 연기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미한 수준의 참여도라 하더라도) 넷플에서 전 세계 대상으로 서비스되는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보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긴 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에 크레딧을 올리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여담으로 이 작품이 공중파/종편 편성에 실패해서 넷플 오리지널로 방영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편성을 거절한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 작품이 넷플에서 드라마 부문 1위를 찍은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참 궁금하다. 아니 그렇게 감이 없나? 그냥 머글인 내가 시놉시스와 주연 배우진만 봐도 기대감이 마구 솟구치는구만… 그러니까 요새 TV에 볼 게 하나도 없지.
그나저나 내가 <은중과 상연>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가 2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주동우 주연의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다른 하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줄리앤 무어, 틸다 스윈튼 주연의 <룸 넥스트 도어>이다. 두 작품 모두 내가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주위에 여기저기 많이 추천한 작품들인데, <은중과 상연>의 메인 스토리라인인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가장 가까운 두 명의 친구 사이의 우정과 애증 관계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또 다른 핵심 플롯인 존엄사와 인생의 마지막을 친했다가 멀어진 옛 친구와 함께 하는 내용은 <룸 넥스트 도어>를 연상시킨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한국에서도 김다미 배우 주연으로 <소울메이트>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됐었는데, 역시 한국에서 리메이크 됐던 중국어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마찬가지로 원작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예전 글 참조: https://brunch.co.kr/@mchoi31/22).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래도 “안생” 역을 주동우 배우만큼 잘 소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주동우 배우는 중화권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의 뛰어난 연기력과 귀여운 외모를 모두 갖춘 매력적인 배우인데, 한때 그녀의 매력에 빠져 그녀의 필모 전체를 다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먼 훗날 우리>를 추천한다.
<룸 넥스트 도어>는 202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나는 스토리도 신선하고 좋았지만, 특히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스무스하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과 영화의 전반적인 색감, 미장센, 음악 선정 같은 게 너무 좋았다. 얼마 전에 쿠팡플레이에 올라왔는데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보실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극 중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마사”의 아래 대사 때문인데, 난 이 대사가 정말 기억에 남고, 정말 격하게 공감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추억은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놔야 한다. 억지로 재현하려고 하면 처음의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마저 퇴색되어 버리고, 소중히 간직하던 아름다운 추억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튼 지금부터 드디어 <은중과 상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 하는데, 15회나 되는 꽤 긴 드라마에서 나에게 가장 와닿은 장면은 총 3개 정도였다. 근데 내가 뽑은 장면들을 보시면 느껴지시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포인트에 꽂히는 편인 거 같다. 사실 나는 극 중 메인 스토리 라인인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은중”과 “상연”의 평생에 걸친 애증 관계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늘 그렇듯이 나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거나, 나로 하여금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시키게 만드는 장면들을 가장 좋아한다.
극 중 나름 초반에 나온 이 장면은 "상연"이 "은중"의 당시 남자 친구인 "상학"과 종각 근처를 걷는 장면인데, 이때를 계기로 이전까지는 "상연"을 순전히 여자친구의 친구/룸메 겸 동아리 후배로만 생각했던 "상학"이 약간 흔들리게 되고, 이는 "은중"과 "상학"의 결별, 그리고 또 "은중"과 "상연"의 두 번째, 그리고 훨씬 더 길고 골이 깊은 결별로 이어진다. 스토리 상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이긴 하지만, 내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단순히 저 장면이 너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상학"과 "상연"은 원래 술만 조금 깰 겸 지하철 역까지만 걷기로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화가 너무 재미있고 끊기지가 않아서 결국 충정로를 지나 "상연"의 집 앞까지 도착해 버린다. 나도 예전에 성대에서 안국역까지, 종각에서 경희궁까지 뭐 이렇게 여기저기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걸은 적이 많은데, 마음이 잘 맞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피곤함도 잊은 채 주구장창 계속 걷고 싶어지고, 도착지에 도착하면 아쉬운 맘이 든다. 그리고 늘 걸어다니는 우리 회사 근처에서 찍은 장면이라 그런지 특히 더 반가웠다.
두 번째로, 그리고 <은중과 상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극 중 "은중"이 엄마에게 "상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나는 <은중과 상연>은 전반적으로 대본이 참 잘 쓰여졌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작품의 핵심 스토리라인인 “은중"과 "상연"의 애증관계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이 대사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은중"의 말은 거짓말이다. "은중"은 애써 "상연"이 그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별거 아닌 것처럼 표현하려 하지만, "은중"은 "상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고, 생각이 나기 때문에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 그 둘은 그런 관계다.
은중: 미워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야 나는.
은중 母: 뭐가 달라?
은중: 달라.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그리고 예전에 <헤어질 결심>에 대해서 쓴 글에서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예전 글 참조: https://brunch.co.kr/@mchoi31/5), 나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가끔 영어 자막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특히 내가 아주 맘에 드는 대사들은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됐을지 너무 궁금해서 항상 영어 자막을 켜고 다시 뒤로 돌려서 확인하곤 한다. 여기선 "싫어한다"를 "dislike"로, "미워한다"를 "hate"로 번역했는데, 여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솔직히 그다음 영문 번역은 조금 실망스럽다. 물론 정확하면서도 맛깔나게 번역하기엔 어려운 대사라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은중"이 "상연"에게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인 것 같아서 아쉽다. 나라면 "It's different. Disliking her, it means you're glad that she never crosses your mind, but hating her, it means the mere thought of her causes you pain." 뭐 이런 식으로 번역했을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이왕 영어 이야기를 좀 시작한 김에 계속해보자면, 이 드라마의 영문 제목을 왜 <You and Everything Else>로 정했는지도 좀 궁금하다. 물론 외국 시청자들에게 <Eun Jung and Sang Yeon>이란 제목은 좀 생소하고 눌러보기 꺼려졌을 것 같긴 한데, 한번 추측을 해보자면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친 상대방을 의미하는 "you"에, 그리고 질투, 애정, 그리움, 미움, 라이벌 의식 등의 모든 감정을 everything else로 퉁친 게 아닐까? 그리고 뭔가 "else"란 단어의 "그 외 중요하진 않은, 부수적인"이란 뉘앙스를 통해 "은중"과 "상연"이라는 두 사람 그 자체 외에는 과거와 (포스터에도 적힌 "선망"/admiration과 "원망"/resentment 포함) 기타 사소한(?) 감정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예상해 본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넷플릭스 분들께 물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존엄사를 신청하고 "은중"과 함께 스위스로 간 "상연"의 임종 장면인데, 뭔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 절친한 친구 최도영의 손을 잡고 임종을 맞이하는 장면이 떠올라서 맘에 들었다 (예전 글 참조: https://brunch.co.kr/@mchoi31/6). 사실 여기에 존엄사에 대한 나의 생각도 조금 써볼까 하다가, 워낙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 이미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스킵하기로 했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부제로 붙인 "글이 가진 힘", 오직 글만이 가진 힘에 대해서 쓰고 싶어서였는데, 워낙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보니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 보니 글이 아주 길어졌다. 그리고 막상 내가 쓰고 싶었던 내용은 굉장히 짧다는 게 아이러니한데, 극 중에서도 "은중"과 "상연"의 30년 묵은 앙금을 눈 녹듯이 녹여버린 것은 "상연"이 남긴 아주 짧고 진솔한 글이었다. 30년이나 걸려서야,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상연"은 드디어 솔직히 그녀가 "은중"을 좋아했고, 좋아하면서도, 좋아해서 미웠고, 그래서 파괴하고 싶었음을 고백하는데, 아마도 말로는 끝까지 절대로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은중이를 좋아했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좋아하기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미웠다.
그렇다. 글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 영미권에서는 종종 글 쓰는 행위를 "therapeutic" 하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말로 하면 오글거리고,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서 못할 이야기도 글로는 담백하고 솔직하게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직 글로만 표현이 가능한 감정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극 중 "은중"이 마지막에 "상연"과 스위스에 동행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도 “은중"이 본인과 "상연"에 대해 글을 쓰며 과거를 회고하는 과정에서 "상연"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계속 뜨문뜨문하게라도 글을 쓰는 거 같다.
"나에게 삶이란 열어 보기 힘든 상자다. 돌아보니 결국 몇 개의 이름만이 남았다."
-상연의 회고록 중
그나저나 나는 나중에 돌아보면 몇 개의, 누구의 이름이 남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