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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잊어버리고 그 사람을 기억합시다.”

<2025 치매 생태계 세미나> 1회 차 후기

by 이인현

최근 '냉장고안리모컨 with 노원'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경도인지장애 / 초기치매 인식개선을 목표로 당사자와 창작자가 1:1로 만나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나도 당사자 한 분과 팀을 이뤘고 지금 3개월 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을 쓸 예정인데 9월쯤 최종 결과물이 나올 예정이다.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나도 초기치매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얼마 전「망각 - 알츠하이머병이란 무엇인가?」(데이비드 솅크, 2003, 민음사)란 책을 읽었고, 지금은 「기억의 뇌과학」(리사 제노바, 2022, 웅진지식하우스) 이란 책을 읽고 있다. 관련 교육도 신청해서 종종 듣고 있다. 이번 글은 〈2025 치매 생태계 세미나〉1회 차에 참여하고 작성한다. 간단한 내용 요약과 감상을 덧붙였다.


(1) 우리는 왜 치매생태계세미나를 시작하는가 (서정주 한국에자이 사회혁신 이사)

한국 사회는 현재 100만 명 정도의 치매환자가 있고 2050년엔 300만 명에 이를 것이라 예상된다. 치매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문제가 된 질병이다. 이전에는 치매가 중요한 질병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노화 이후에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치매에 관한 대비 혹은 사회적 시스템의 준비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더는 치매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에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 문제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의료, 돌봄, 정책, 연구, 기술,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섹터가 서로 연결되어 협력하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스크린샷 2025-08-05 142543.png 마리아나 마주카토(2021), 미션이코모니


이 세미나를 준비한 주요 기관인 한국에자이는 글로벌 제약기업인데 다방면의 사회혁신 공헌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환자'에서 '모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들이 질병이 없는 상태에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이후 경험전문가의 사례를 문장으로 소개했다. 치매 당사자를 표현하는 말로 경험전문가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이들이 앞서 살아온 역사를 존중하고, 노화와 치매라는 현상을 먼저 경험하고 대처해 나가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흥미로운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한다.


경험전문가(치매 당사자)의 목소리

-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5년 이내에 치매가 될 확률이 70%다. 그날 내가 너무 막… 어떻게 해야 될지 깜깜한 거예요.

- 아 나는 이게 치매라는 말이 너무 내 입에서 이 두 글자가 싫은 거예요.

- 집안에서는 괜찮은데 집 밖에서는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길을 찾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주변에 내 카드(헬프마크)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하면 사람들이 잘 도와줘서 두려움 없이 외출할 수 있다.

- 병원에 가기 위해 이동 지원 신청을 2주 전에 하고, 일정을 조정하고, 신청 허가를 받고, 병원 예약을 하는 등 일련의 과정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된다.

- 길을 잃거나 갔던 길을 다시 걷는 식의 일들을 방지하고자, 표지판이나 간판의 사진을 찍고 메모하며 길을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

- 달력을 매일 들여다보며 일하러 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너무너무 즐거워서 기다려진다. 센터에서 일을 하면, 성취감이 생긴다. 집안일을 하는 것과, 목적을 가진 업무를 하는 건 무척 다른 차원의 일이다.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은 생각을 하며 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해치우는 형태의 일이라고 느낀다. 주 1회 진행하는 센터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즐거움을 내게 준다. 삶의 보람으로 연결될 정도의 기쁨이다.

- 요리는 매일 한다. 다만 양념을 할 때, 어떤 양념은 빼먹고, 어떤 양념을 두 번 넣게 된다. 애들이 가끔, 할머니요리 맛이 왜 이러냐고 묻기도 한다. 요리할 때 양념을 깜빡하는 게 조금 불편하다.

- 센터에 오면 대접받는 기분이다. 선생님들이 모두 너무나 친절하시다. 다 좋다. 그리고 오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 공감도 잘되고, 대화도 잘되어서 무척 좋다.


치매에 관련된 생태계 구축에서 앞서 가는 국가들은 일본과 유럽인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물론 여러 가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D-LAB이 있다. 치매리빙랩, Dementia Lab의 준말로 치매와 관련된 협력기관들이 서로 협력하는 넓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사업이다. 치매에 무지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치매를 대하는 주체와 기관들의 전체적인 지형이 대략 눈에 들어왔고, 이 단체들의 협력으로 굉장히 다각도로 접근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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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치매 생태계 구성을 위한 서사 구성 전략 (송위진 한국리빙랩네트워크)

치매에 관한 서사를 만드는 것은 내가 특히 관심 있는 분야다. 치매에 관한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것인가? 기존에 치매에 관한 서사, 이야기, 특히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치매에 관한 이미지는 회피, 분리, 숨기기, 비극에 가깝다. 특히 치매를 '전문조직의 제품-서비스 공급의 차원, 즉 전문적인 관리 기관과 당사자 수요의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 이것을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창조하는 생태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내가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느낀 것은 당사자 / 지원조직 등 증상에서 서사로의 연결이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극히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창작활동에서 당사자의 증상이 중심이 되어야 함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사업 주관기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고 당사자를 대하는 창작자의 자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러한 조정 과정 자체가 주는 맥락과 의미가 있으므로 그 과정 또한 어떻게 서사에 포함될 수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사회적 맥락에서, 특히 질병이 있는 당사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서사 창작의 능력이 그것을 초과하여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게 필요할까? 이건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다행히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는 상당 부분의 자유가 있었다. 아래 <냉장고 안 리모컨 with 노원>이 내가 참여하고 있는 경험전문가 : 창작자가 매칭되어 창작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이 사업에서는 매체나 형식, 내용 면에서 자유가 있었고 창작자의 의도를 크게 존중해주었다. 그 점이 나에게는 증상을 넘어 한 인간과의 우정을 나누는 경험을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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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두를 위해 지속가능한 치매 생태계 만들기 (충남대학교 박명화)

생태계가 무엇인가? 가능한가? 이번 세션에서는 치매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질문들을 소개했다.


당사자의 요구를 알고 있는가?
당사자의 선호와 가치를 확인하는가?
치매생태계의 이해관계자는 누구인가?
지역사회 자원은 연결되어 있고 접근가능한가?
초고령사회 달라질 돌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가?
돌봄의 전주기를 위한 지원이 있는가?
모두에게 긍정적 돌봄 생태계인가?
안녕을 안전보다 중시하는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가?


이중 가장 흥미로운 질문 두 개를 꼽아보겠다.

첫 번째는 당사자의 선호와 가치를 확인하는가?이다. 정말 당사자 이외 사람들이 당사자의 요구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걸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호주에서 꼽은 아래 문항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보편적이고 당연한 가치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당사자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환경, 힘, 시스템을 생각하면 그것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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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안녕을 안전보다 중시하는가?이다. 치매당사자와의 여러 활동, 특히 밖에 나가서 낯선 장소를 가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해 멀리 가야 할 때 두 가지 가치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치매당사자는 흥미롭고 기쁜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안전상의 이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물론 안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만 때로는 그 안전의 가치 추구가 안녕을 침해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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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치매당사자를 직접 돌보는 사람이 아니고 당사자가 돌봄 노동을 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치매를 바라보며, 그 치매라는 증상을 초과하는 한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


세미나는 총 3회로 진행된다. 세미나 중 나온 아래 인용구로 1회 차 후기를 마감한다.


“치매는 잊어버리고 그 사람을 기억합시다.”
“Forget dementia, Remember the person”

벨기에치매전략재단
(the foundations of the Dementia Strategy of Flanders)



참고

한국에자이 나우 블로그 https://blog.naver.com/now_eisai

내마음은콩밭 협동조합 블로그 https://blog.naver.com/kkongb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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