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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May 04. 2019

이후의 소설,『레몬』

, 이후의 소설

레몬

권여선

창비

2019.04.30

208p

13,000원


레몬은 과정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라

어떤 사건의 이후를 말하는 소설입니다.

(때로는 소설은 그래야한다고 믿게 됩니다.)


소설 <레몬>의 '겉 이야기'는

아름다웠던 고등학생, 김해언이 살해되는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살인자와 살인의 동기와 방법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고

사건과 관련된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 소설의 챕터들은 몇 년의 시간을 뛰어넘고 또 서술하는 화자가 조금씩 바뀌면서

사건에 대한 진실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소설 <레몬>의 '속 이야기'는

해언이 살해되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해언의 동생, 해언의 엄마, 해언의 학교 친구, 해언이 살해된 사건의 용의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은 해언의 동생 다언입니다.

소설은 그 사건이 사람들의 무엇을 파괴했고 무엇을 남겼으며 무엇을 잃어버리게 했는지

혹은 해언이 살해된 것이 원인이 되고 지금의 삶은 결과가 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레몬의 겉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다루면서도 그 사실을 중요하게 포장하여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해언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서

당시 목격자 중 한 명인 태림은 상담사와 통화를 하면서 이를 발설합니다.

태림은 정신적으로 불안해보이고 태림의 말들을 정확히 신뢰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진실은 해언의 죽음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런 거라고? 그게 다란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의 겉 이야기에서 중요했던 문제들은 아주 간결하고 단순하게 제시되며

소설을 읽고 있던 저에게 일종의 반성을 주었습니다.

해언이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에

저는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죽은 이유와 과정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해언의 죽음을 직접 보기 위해서 소설을 읽고 있었던 셈이었지요.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나서야

해언의 죽음을 보려했던 저의 기대가 부질없고 폭력적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소설은 계속해서 해언의 죽음 이후를 말하려 합니다.

해언의 죽음 이후를 말함으로써

겉 이야기에서 제시되었던 사건과 인물들을

속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합니다.

그런 재창조에 대표적인 인물이 한만우 일겁니다.

그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에서 

매끈한 참외의 얼굴을 한 사람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합니다.

한만우의 삶이 변하는 게 아니라 한만우를 보는 다언의 시선이 변하고

그럼으로써 독자의 시선도 변하는 것입니다.


레몬이라는 소설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건들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겉이야기에 속해있던 인물과 사건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급격하게 바꾸지 않고 조금씩 이동할 뿐입니다.

속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던 독자의 시선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따라서 저는 레몬이 겉이야기보다 속이야기가 중요한 소설이며

죽음의 과정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다루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의 삶은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이 질문을 마음에 담고 작가님과 만날 기회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우연히 어디선가 레몬을 만나게 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한작가당 #권여선 #레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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