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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Aug 10. 2020

013_삼척에서 다시 만나길

여름과 나는 몇 해전 삼척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그때는 우리가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고 연애를 하던 때는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팀에 속해서 각자의 영상을 만들었고, 여름은 거기서 한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할머니를 영상에 담았고,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하루 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 여름이 만들었던 영상을 나도 봤고, 아직도 몇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1 

여름은 할머니들과 앉아 마른오징어를 쫙쫙 펴서 정리하고 있다. 

관광객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 오징어가 얼마냐고 물어서 할머니가 답을 하고, 

관광객이 값을 깎아 달라고 하자 불만스러운 얼굴로 오징어를 던져주는 할머니.


#2 

할머니의 집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할머니가 무언가를 씻고, 

아마 비슷한 타이밍에 나오던 할머니의 삶에 관한 증언.

제주도에서 해녀를 하다가 삼척으로 시집을 와서 해녀 생활을 계속해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것.


물론 나의 기억에 의존했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그런 기억들이 여름과 나에게 남아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올해 여름, 우리는 모처럼의 휴가가 생겼고 삼척에 다시 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이름이 유명한 여배우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에 

여름은 할머니의 이름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할머니의 연락처를 다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드리니 그 번호는 없는 번호였다. 

다시 지도를 뒤져서 할머니의 민박집 주소와 연결된 번호를 알게 되었다.

전화를 받은 건 젊은 여성분이었고 민박집에 대한 안내를 해주셔서 예약 날짜를 말씀드렸다.


그리고 통화 말미에 여름은 

"000 할머니 댁이 맞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저희 어머니를 어떻게 아세요?"

"아, 제가 몇 년 전에 거기서 영상도 찍고 할머니 집에서 묵기도 했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작년에 사고로 돌아가셔 가지고.."


여름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여름과 나에게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소식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위로의 말을 드려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갑작스러운 위로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민박집의 계좌로 예약금을 입금했다.

곧 삼척에 갈 것이고 

우리는 삼척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감정을 만나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만날 것 같던 사람과 만나지 못한 채로 휴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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