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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Aug 08. 2020

012_손톱 물어뜯는 여자

여름과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건 손톱 때문이었다. 

울퉁불퉁한 피부와 지저분한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못생긴 손.

그 위에 엉성하게 얹혀있는 짧은 손톱.


제대로 자랄 틈을 주지 않고 물어뜯는 것들은 늘 그렇게 모양이 망가져버린다.


나도 초등학교 때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어렸을 적에는 엄마가 손톱을 잘라주었던 것 같고 

그다음에는 한동안 손톱을 물어뜯고는 했다. 

엄마가 가게 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수록 내가 손톱을 물어뜯을 시간은 늘어났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손톱을 물어뜯는 걸 그만두었다. 

여름은 그만두지 못했다.


어느 날, 여름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뜯는다며 방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걸 지켜보기로 했는데, 여름은 카메라가 켜진 순간에는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다.

카메라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손톱을 뜯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손톱은 언제 어떻게 물어뜯든 결국 다시 자라난다. 

지금 망가뜨리더라도 다시 예쁘게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신경 쓰이는 것들을 물어뜯고 자르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쾌감에 처해도 

다시 손톱이 자라길 기다리면 되니까.  


그래도 나는 여름이 손톱을 물어뜯으면 열심히 말린다. 

손톱을 소중히 하듯이 

나에게서 자라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름은 손톱을 가만히 두고 길러보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을 했고,

그럼에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손톱을 뜯었다.

가장 최근의 다짐에서 여름은 어느 정도 손톱을 기르는 데 성공했고

나는 길게 기른 여름의 손톱이 정말 정말 이쁘다고 말했다.


제대로 자랄 틈을 주면서 물어뜯지 않는 것들은 그렇게 자신의 균형을 스스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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