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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Aug 04. 2020

011_사랑, 기억, 기록

사랑과 기억


기억은 사랑과 비례한다.

기억상실은 사랑의 상실과 거의 동일한 말이며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이를 증명한다.)

상대방의 정보에 대해, 상대방과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다면

사랑의 크기가 더 크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름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기억한다.

보통은 여름의 객관적인 정보들 보다는 주관적인 정보들이다.

예를 들어 여름의 혈액형은 아직도 헷갈리는 반면에,

여름이 내가 먼저 잠들고 혼자 깨어 있는 시간을 싫어한다는 걸 기억한다. 

상대방에 대한 주관적인 정보들을 모아 우리는 상대방을 다시 구성한다.

사랑이라는 건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과 나누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 가상의 인물이 실제의 인물과는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과 기록


기억은 쉽게 잊히고 말기 때문에 기록될 필요가 있다.

내가 여름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나는 여름과 같이 보낸 많은 시간들이 그대로 소멸하는 것이 아깝다.

중요한 순간들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구체성이 없어지고

두루뭉술한 느낌과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되고 말기 때문에.     


기록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때그때 메모를 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들, 기억해야 할 감정과 분위기를 간략하게 라도 써놓으면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기록이 어려운 경우도 많으므로 나는 기록을 위한 기억법을 하나 고안해냈다.

그건 현재의 상황을 문장으로 서술해서 입으로 말해보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나마 문장의 형태를 만들고 글을 써보면 나중에 훨씬 많은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숙달되고 나면 유용하다.




기록과 사랑     


그렇게 기록된 것들을 여름은 감명 깊게 본 것 같다.

내가 쓴 글을 여름도 본다.

어떤 글을 읽고는 울기도 했다.

그건 이게 여름과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것을 여름도 겪었고

누구보다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과 이야기들을 기억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은 나와 가까울수록, 나와 관계가 있을수록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멋진 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가 보내준 편지다.

그건 세상의 어떤 대문호가 쓴 글보다 나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풍성한 단어가 있는 것도, 빼어난 미문도 아니지만

엄마와 나의 관계는 내가 그 기록을 사랑하게 한다.

기록에서 사랑을 느끼게 한다.   


가끔은 이렇게 글을 쓰는 목적을 헷갈린다.

누구를 위해서 이걸 쓰고 있나.

나를 위해서, 혹은 여름을 위해서, 혹은 이 글을 우연찮게 읽게 될 제삼자를 위해서일까.

어찌 됐든 기억과 기록과 사랑은 모두 소중하고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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