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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Aug 14. 2020

014_우리가 싸우는 법

우리는 종종 싸운다.

그러나 싸운다는 뜻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싸우지 않는다.

누군가 언성을 높이는 사람도 없고 화내는 사람도 없다.

상대방을 때리거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싸움은 각자의 이유에서 시작되는데 보통

여름은 '내가 자신을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서 싸움을 시작하고

나는 '내가 여름을 위해 참고 노력하는 걸 알아주지 않는다'로 싸움을 시작한다.


싸움의 예)

운전을 하고 있는 내게 조수석에 있는 여름이

"머리가 아파서 눈을 좀 감고 있을게."

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도 조수석에서 잠을 자는 여름을 놀리고자

"언제 나한테 이야기하고 눈 감았다고 그래?"

라고 말한다.


싸움은 때로는 느닷없이 시작된다.

한쪽의 기분이 상한 그 순간부터 싸움이 시작되고,

특별한 선전포고 없이도 싸움에 들어섰다는 걸 동시에 깨닫는다.


여름의 얼굴이 굳고, 마음이 상한 걸 표현하기 위해 뚱한 표정을 짓고

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나는 짧은 시간, 나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 기분을 나쁘게 했을지를 점검하고는 묻는다.


"기분이 안 좋아?"

누가 봐도 기분이 안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기분이 안 좋냐고 묻는 건

네가 화가 난 이유에 대해 듣겠다는 뜻이다.

화가 난 사람은 자신이 화가 난 이유에 대해 말한다.

혹은 조금 더 복잡한 경우라면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

라고 말한다.


이때부터는 각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변호를 하게 되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물론 대단할 게 있을 게 없다.

아까의 상황에서 자신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말했으며 너의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아픈걸 먼저 물어봐야 되는 거 아냐?"


그 대화의 끝은 더 상처를 크게 입힌 쪽이 사과를 하면서 끝난다.

특히 한쪽이 눈물을 흘릴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맞아. 내가 아까 그렇게 이야기해서 미안해."


어쩌면 이런 대화의 사이클을 여러 번 반복하고 화가 풀린다.

즉, 우리는 싸운다기보다는

'내가 더 상처 입었음'을 견주는 대결을 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왜 속 시원하게 화 한번 내지 않고 이렇게 서운해만 할까?

잘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의 상처에 조금 민감한 듯하다.

그러니까 상처를 입힌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나쁜 일이기 때문에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어떻게 됐든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걸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절한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다른 문제를 만들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만

우리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난 사과를 했고 여름은 이제 괜찮아졌어 라고 말했다.

때로는 같이 울어버리기도 하는데... 이건 너무나 민망한 일이라 더 이상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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