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진동하는 것들> 서평
마음은 끝없이 팽창해서 우주의 끝에 이르렀다 다시 수축하기 시작했다. 거대했던 마음이 다시 아주 작은 점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우주는 적막했다. 그렇지만 곧 새로운 진동이 나타날 것 같았다.
이인현, 『진동하는 것들』, 2020, p.156.
어두운 밤도 사실은 짙은 파란색이라고 하더라고요. 밤에 내리는 비는 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요. 동생이랑 저는 그때부터 비 맞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흠뻑 모든 게 다 젖을 정도로 비를 맞고 어딘가를 통과하면요. 비가 밤의 색을 가지고 와요.
위의 책, p. 33-34.
지붕을 닫고 불을 꺼서 완벽한 어둠을 만들었다. 바닥에 앉아 비가 천장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비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눈을 감고 천문대가 있는 산 전체를 뒤덮는 비를 그렸다. 비는 한 방울도 내 몸에 닿을 수 없다, 지금 이 곳은 안전하다, 어떤 것도 나를 해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온 세상이 푹 젖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밤의 색으로 물들기를 바랐다.
위의 책, p. 43.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족석에 앉아 있는 엄마를 생각했고,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보내고는 또 후회만 남겼다는 게 나를 서글프게 했다.
위의 책, p. 81.
풍전씨. 제가 당신을 실제로 만날 일이 없다는 건 큰 행운입니다. 그래야 이렇게 당신을 걱정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당신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저는 아마 당신을 혐오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은 행운이라 말하는 겁니다. 이렇게 당신의 바깥에서 당신의 존재를 걱정합니다.
위의 책, p. 116.
이 소설들은 어떤 시절을 담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그 시절을 봉할만한 적당한 용기를 찾았다.
용기는 그릇이기도 하고 씩씩하고 굳세며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기도 하다.
밀폐되지 않은 용기 덕분에 시절은 이제 천천히 썩어갈 것이다.
위의 책,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