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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맛아재 May 14. 2020

운수 좋은 어느 40대 직장인

회사는 어렵지만 이따금 신입사원이 들어오곤 한다. 예전엔 신입 들어온다고 하면 어떻게 요리를 해보려했다.

"저 자식은 이제 나랑 경쟁자다."

"한번 뒤지게 고생해봐라"

" 앞으로 커피 심부름은 너다"


어후. 이제 아니다. 큰일 난다. 단순히 최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아니라는 게 아니다.

부서 배치되고 사무실에 딱 들어오면 천진난만한 얼굴을 장착한 중학생, 고등학생이 들어온 것 마냥 어색하다.

진짜 쟤를 데리고 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과장되게 얘기하면 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몰려오는 게

사실이다. 뭐하러 우리 부서에 왔을까 라는 약간의 두려움도.

그러다 신입사원들의 자기소개 자료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SKY캐슬에 토익 900점 이상은 기본이고 중국어, 스페인어에 각종 대회 수상까지.

그들의 과거 경력만 보면 레드카펫이라도 깔아줘야 하지만 그래도 회사는 회사다. 선배 말 잘 듣자.


나는 제목처럼 운수가 좋다. 고졸인데도 불구하고 연구 부서에 배치돼서 지금까지 연명하는 중이다.

위에 말했던 스펙들을 기본 탑재된 인력들로만 꾸려져 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고 고졸 제조직으로 입사를 했지만 어찌어찌 옮기고 돌고 옮기고 돌고 좋은 기회가 있다 보니 들어가기 어렵다는 연구 부서에서 열심히 날고 기고 있다. 그러려고 하고 있다. 고졸은 부서에 나밖에 없다.


가끔씩 화려한 스펙을 가진 동료들과 일을 하다 보면 배울 점이 많았지만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고 이렇게 여기서 있어야 하나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부서장에게 얘기를 해서 다시 마음 편한 제조직으로 보내달라고 할까 수백 번 생각을 하곤 했었다.

원래 그렇지 않나? 학교에서도 영재반, 우월반처럼 성적에 따라 등급을 나눠서 반을 배정하는 것처럼. 그래야 끼리끼리 있으면 학습 능률이 올라가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고.


그렇지만 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지내다 보니 이 사람들도 사람이다. 나보다 스펙은 뛰어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물론 내가 그들보다 뛰어나진 않기 때문에 배울 점이 더 많았고 과거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이따금 내뱉는 나의 업무 내용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


처음 해당 부서로 옮긴다고 했을 때 와이프의 만류가 극심했다.


"당신은 거기 가서 못 버틸 거다. 날고 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개망신을 당하려고 거기를 가느냐. 그냥 잔류해라"


만약 내가 그 당시 잔류를 했더라면 발전이 없는 운수 좋은 직장인으로 남았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만 보면 꽤 괜찮은 운 좋은 직장인으로 잘 살고 있다.

야구도 모르지만 인생 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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