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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19. 2019

<봉오동 전투>

반일감정이 완성도를 담보하진 않는다.

언제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정통 역사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이고, 흥행을 목표로 하는 상업영화의 성격상 어느 정도의 픽션. 어느 정도의 신파. 어느 정도의 국뽕은 필수불가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느 정도에 머무르는 수준이 아닌 지나치게 과한 수준이라면 정말 수준 이하의 작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봉오동 전투>는 순도 99%의 국뽕 영화다. 국뽕이란 표현도 순한 표현이고, 마치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2시간 내내 똑같은 감정을 강요하고 있다. 2019년도에 냉전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선전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과거 국민학교 시절에 보던 반공영화 같은 느낌. <봉오동 전투>는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영화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나 의식 수준이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굳이 2시간 내내 핏대를 올리며 웅변하듯 떠들지 않아도 일본의 만행이나 추악한 모습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 영화는 과거 반공영화처럼 단순한 선악구도를 강조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기본적인 서사마저 내팽개치고 있다. 서사라고 집어넣은 것이 장하와 누나의 에피소드인데, 정말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은 기계처럼 반일 구호를 외치느라 정작 자기 얘기는 하지를 못한다.

유머랍시고 구겨 넣은 장면들은 갑분싸 그 자체이다.

과도한 슬로모션은 이 영화를 더욱 길게 느껴지게 하는 장본인이다.

그리고 웬 뜬금없는 로맨스까지...



2시간 내내 연출자는 한국은 좋은 편이고, 일본은 나쁜 편이다 라는 내용을 강박적으로 나열하는 것 외에는 하는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일본군 월강 추격대 대장의 집무실이 난데없이 동물원 사파리가 되고 뜬금없이 동물 해부를 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의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때부터였다. 이 영화가 개봉 전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갈 거란 생각이 든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찌 이렇게 안일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제 강점기 시절 이야기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한 일이다. 화가 안 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조악한 완성도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국민들의 반일감정에 편승해 돈이나 벌어보려는 얕은 장사 속이 아닐 수 없다.  <군함도>에 이은 또 하나의 역사에 대한 배신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은 그 자체가 아픔이자 슬픔이다. 그때의 역사적 사건들이 대중매체에 의해 그저 가볍게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이용되는 것을 보는 것은 이제 정말 힘겨울 지경이다.



장점도 있다. 산악에서 이루어지는 전투이다 보니, 부감을 강조한 공중촬영 장면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영화 초반에는 나름 보는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선 에서 멈췄어야 했다. 가면 갈수록 동일한 구도의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피로감이 느껴지고, 되레 전투 장면의 긴장감이 감소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


사실, 스토리 부분이야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는 핸디캡이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왜곡하지 않고 픽션을 구성하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영화 제목이 <봉오동 전투>이니만큼 전투 장면에서의 시각적 쾌감은 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기대치를 훌쩍 밑돈다. 마지막에 대한독립군, 군무 도독부 등등 한국 항일 군대들이 산 위에서 집결할 때, 그때의 쾌감은 나름 괜찮았다. 나는 속으로 독립군 Assemble! 을 외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군을 영웅화시키는데 집착하느라 전쟁영화 그 자체의 묘미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 이 영화는 모로 가도 국뽕 수치만 높이면 되는 거였으니까 나름 그 목적에 충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단순히 분노를 재확인하고 감정을 배설하는 것이라면 그 방식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큰 도움은 안될 것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좀 더 냉철하고 지혜로운 판단과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나 TV 같은 대중매체들도 역사를 좀 더 깊이 있고 소중하게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그냥 관련 서적이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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