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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15. 2019

<주전장>

팩트 활용의 좋은 예

좋은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편의상 다큐멘터리 장르를 이분법으로 구분해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하나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그대로 담는 객관적 의미의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나머지 하나는 연출자의 주관적인 사상이나 이념이 반영된 주관적 의미의 다큐메터리. 이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내겐 좀 더 편한 다큐멘터리 접근법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이크로 코스모스>, 아니면 조상님 격인 <북극의 나누크> 정도가 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주자로 ‘마이클 무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주전장> 은 어떨까. 과연 이 두 가지 기준의 어디에 속하는 다큐멘터리 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쪽 다인 듯싶다. 연출자의 생각과 메시지들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면서 놀랄 정도로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어쩌면 그 부분이 더욱 이 영화를 호소력 있게 만든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대한민국에서 개봉하게 된 이 영화는 일본인이 만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이런 부분이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었다. 물론 일본계 미국인이긴 하지만,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대한민국 바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던 위안부 관련한 여러 가지 방송, 영화, 각종 콘텐츠들은 다소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김복동> 도 그런 이유에서 아직도 관람을 망설이고 있다. 물론 우리가 분노해야 마땅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다큐멘터리라면 조금은 차갑고 이성적인 톤으로 문제의 중심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주전장> 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와는 결이 아주 달랐다.



영화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되고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 주의 인사들과 친일 미국인들,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고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역사학자, 정치인, 사회운동가 들의 인터뷰로 2시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출자는 결코 한쪽의 목소리만을 집중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다만 인터뷰의 나열과 편집 그 '말' 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 위안부는 강제징집이 아니고 자발적인 매춘 활동이었다고 말을 한다면 그에 반박하는 자료와 인터뷰를 바로 그다음 장면에 쓰윽 내민다. 이처럼 팩트로 때리니 설득력은 배가 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굳이 감정적으로 호도하지 않아도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이지만, 위안부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이 영화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위안부 문제를 표면적으로 다루는 것을 넘어서서 현재 아베 신조로 대표되고 있는 일본 우익의 민낯과 그들이 왜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정하려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하나의 훌륭한 교육자료이다.


이쯤 되니까 왜 이 영화가 전체 관람가로 정해졌는지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연령제한 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바라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인터뷰의 나열은 사람에 따라 조금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는 단 한 번도 격정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마이클 무어가 그랬듯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일말의 영화적 재미는 주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가 않다. 그냥 계속되는 인터뷰, 반박, 또다시 반박, 자료 제시 가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 지겨울 수 있다.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와 진실이 무조건 재미로만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잠깐 동안 졸더라도, 어차피 2시간 내내 잘 게 아니라면 충분히 볼 필요가 있는 영화인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그리고 내일은 74주년 광복절이다. 최근에 불매운동으로 제2의 독립운동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올바른 움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주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크기를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을지 몰라도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시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이로 인해 위안부 문제가 일본-한국을 벗어나 이제는 미국이 위안부 문제의 주된 싸움터 (主戰場)가 되었다고 영화는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진실이 더욱더 넓게 퍼져 알려지길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 뿌리내리길 원하고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인 곳 어디가 됐든 그곳이 바로 '주전장' 이 될 것이다.



ps: 영화 후반부에 웃긴 장면 있습니다. 물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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