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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08. 2019

<엑시트>

재난영화, 대한민국을 코스프레하다.

 어떤 영화는 특정 문화권에서만 유독 잘 통하는 영화들이 있다.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코미디 영화들이 국내에 개봉했을 때는 흥행에서 참패를 면치못하는 광경을 그동안 수도 없이 봐왔다. 아무래도 미국식 유머와 한국식 유머가 다르기도 하고, 코미디만큼 나라와 민족과 언어에 따라 호불호 갈리는 장르도 없을 것 같다. 굳이 코미디 장르가 아니더라도 각 나라마다 자국의 사람들만 '공감대 형성' 이 가능한 영화들이 해마다 박스오피스의 상위권을 점령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엑시트> 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취업준비생인 용남과 그의 가족은 전형적인 한국의 가족이다. 취업준비생인 용남을 비롯하여, 리모컨 전쟁에 한창인 용남의 엄마와 아빠. 엄마의 김치를 마치 맡겨놓았다는 듯이 찾으러 온 누나. 그 누나가 취업 못한 동생을 구박하는 모습까지 참 낯익은 모습들이다.


용남의 선배인 기백의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학 선배, 동네 형 같은 모습이다. 심지어 사건의 발단이 되는 곳이 어머니의 고희연이 열리는 뷔페 행사장이라는 것도 꽤나 한국적인 설정이다.



어머니 고희연 자리에서 주인공인 용남이 겪는 수난은 한마디로 '웃픔' 그 자체다. 사촌 어르신들의 결혼과 직장에 대한 질문세례는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괴로움일 것이다. 더군다나 용남은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한 상황이니 오죽했으리라. 보면서 절로 공감이 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고희연이 진행되는 씬에서는 장면 하나하나 놓칠 것 없이 그야말로 깨알 같은 재미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외에도 열거하기 입이 아플 정도로 한국적인 클리셰들이 곳곳에 배치가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아주 영리한 영화임이 틀림없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클리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재난영화의 클리셰를 재치 있게 비껴가고 있다.


신파와 국뽕이 없는 한국형 재난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 재난영화로서 스케일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스케일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할리우드와 같은 자본력과 기술력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 영화가 선택한 노선은 꽤나 현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인 용남은 극 중에서 산악 동아리 출신으로 그려지는데, 이 지점이 재난영화로서 나름의 스릴과 긴장감을 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재난 탈출과 문제 해결의 방식이 주로 클라이밍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법칙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한 클라이밍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활도구 들을 활용함으로써 한국문화에 더욱 밀착되고 있다. 이 재난 탈출 방식 또한 마찬가지로 '공감대 형성'을 이루고 있는 부분인 것이다.  보면서 두 배우인 조정석과 임윤아가 꽤나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클라이밍 씬이었다.


주연배우들뿐만 아니라 박인환, 고두심을 비롯한 조연&단역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개개인의 연기가 뛰어났다기보다는 맡은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이 재난영화가 더욱 한국적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었다. 용남의 가족들과 사촌들 그리고 의주의 직장상사. 정말 내 주변에 한 명쯤은 꼭 있을법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매끈한 완성도를 자랑했으면 매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마치 주인공인 용남처럼 약간은 부족하지만 계속 옆에 두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왜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한 명씩 있지 않은가. 너무 완벽해도 매력이 없다는 게 꼭 사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ps: 쿠키영상 있습니다. 다만 아주 짧게 지나가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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