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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ul 24. 2019

<라이온 킹>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자.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마는, 누구에게나 어렸을 적 첫사랑이 한 명씩은 꼭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그때의 추억에 가끔씩 빠지곤 한다. 그리워하고 궁금해한다. 보고 싶어 하며 혹시라도 만난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내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그랬다. <알라딘>,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특히 <라이온 킹> 은 내가 내 돈 주고 극장에서 처음 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넓은 스크린으로 보는 아프리카 대자연의 비주얼은 정말 압도적이었으며, 그 당시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기사자의 성장담은 내게 정말 흥미진진 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내겐 그랬다. '날카로운 애니메이션의 추억' 나의 영화 인생의 지침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실사화 소식을 듣고 그 어느 때보다 올해 여름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2019년 개봉작 중 <어벤저스:엔드게임> 보다 더 기대했던 것은 <라이온 킹>이었다. 25년 전의 그 감흥을 그대로 재현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일단 놀라운 기술력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실사(實寫)'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내내 가지게 만든다. 사자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곤충이나 벌레, 나무나 꽃 같은 식물들의 실사 구현도 상당히 뛰어나다. 몇몇 장면에서는 흡사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필름과도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기술력 하나만으로 긴 러닝타임을 메꾼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실현된 기술이 아닌 이상에야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는 일은 기술력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일이다.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이 당연하다는 듯이 쓰이고 있다. 아무리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라 해도 지금 이 시점에 기술력의 자랑은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내적 줄기는 어떨까.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들은 다분히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플롯이다. 

작고 나약하고 미천하기 그지없는 주인공이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악당들을 아주 손쉽게 물리치고 왕, 왕비, 공주, 왕자가 되어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


 뻔하지만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수십 년 동안 남녀노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 두기도 했다. 또한 디즈니 하면 생각나는 선율들. 그 훌륭한 사운드트랙은 소인이 노인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 재창조되어왔다. 어렸을 때는 재밌었던 이야기들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다가도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면 어릴 때 추억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 그것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디즈니 매직'이었다. 

 

그런데 왜 <라이온 킹> 은 그마저도 충실히 해내지 못한단 말인가. 애니메이션을 실사화로 옮기는 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큰 프로젝트일 것이다.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다시 번복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전에 나왔던 <알라딘> 은 춤과 노래를 최대한 활용해 뮤지컬적인 요소를 극대화 함으로써 이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다. <알라딘> 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보는 내내 흥겨운 건 어쩔 도리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이온 킹> 은 디즈니가 가지고 있는 이 최대 장점을 살리지 못한 채 그저 내셔널 지오그래픽 흉내내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렇게 2019년 최고의 기대작은 최고의 실망작이 되고야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어렸을 때 첫사랑을 10년 후에 반창회를 통해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다. 실망했었다. 내 추억 속에 존재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래, 때로는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제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를 보는데 조금 망설여지게 된다. 지금껏 나왔던 게 다 기대치를 밑돌고 있었는데, <라이온 킹> 이 그 실망감에 거의 종지부를 찍어준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난 또 볼 것 같다. 영화란 나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드니까.


ps: 쿠키영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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