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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25. 2019

<우리 집>

함께 지어져 가는 그 아이들의 집

3년 전 장편 데뷔작인 <우리들>로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윤가은 감독. 그때 그 감정과 떨림들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가운데,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 소식은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전작 <우리들>에서 보여줬던 아이들만의 그 감정선과 또 그로 인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영화 자체는 담담하고 소박했지만 보고 난 후의 여운과 감동은 꽤나 묵직했다. 여러 평론가들과 매체들은 <2016년 올해의 한국영화>로 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의 또 하나의 발견이었던 셈이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이야기. 누구나 어린 시절 겪었을 법한 이야기. 어떤 의미로는 유년시절에 대한 발견이 되기도 한 영화였다.




<우리 집> 은 어떤 영화일까. 제목도 그렇고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면은 얼핏 <우리들>의 속편처럼 보였다. 속편은 아니지만 비슷한 주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푼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지어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윤가은 유니버스' 란 말이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자기 복제가 될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또 다른 아이들의 우주를 보여주며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다.


되레 복제품보다는 새로운 버전의 신제품에 가깝다.



집 #1. 하나의 집


하나의 집은 아빠와 엄마와 오빠가 같이 사는 전형적인 4인 가족이다. 부모님의 벌이도 나쁘지 않고 배경으로 나오는 집의 공간을 보아도 부잣집은 아닐지언정 모자람이 없는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가정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영화 시작부터 전개되는 부모님의 다툼은 어린 하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오빠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중학생인 오빠는 부모님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하나는 어쩌면 이러다가 우리 집이 깨어지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하나는 밥도 같이 먹자고, 가족여행도 가자고 가족들에게 졸라 보지만 혼자 고군분투할 뿐이다.

하나의 집은 안락한 주거공간은 될 수 있겠지만 가정이란 의미로서의 집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매우 위태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집 #2. 유미와 유진의 집


혼자라고 생각했던 하나는 우연찮은 기회로 유미. 유진 자매를 알게 되고 금세 서로 친해지게 된다.

유미와 유진의 집은 옥탑방이다. 골목을 한참이나 올라가서 또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집. 그 집에 옥상이 유미와 유진의 집이다.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은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인다. 적어도 부모님의 다툼으로 가정이 깨어질 일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일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을 뿐이다. 동생 유진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언니 유미의 몫이다.


사실 유미의 고민은 동생을 돌보는 일이 아니다. 유미네 집은 가정형편상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는데, 적응할만하면 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다시 적응을 하고. 이런 과정들이 어린 유미에게는 아주 큰 스트레스이자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유미의 바람은 더 이상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안락한 주거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집 #3. 하나와 유미와 유진의 집


'우리 집은 진짜 왜 이럴까' 극 중에서 하나와 유미가 서로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게 각자의 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매우 귀엽게 그려진다. 서로 힘을 합쳐 헤쳐나가는 모습이 마치 친자매 같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 중에 또 하나의 집. 하나와 유미와 유진의 집이 함께 지어져 간다. 항상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유미와 유진에게 있어 하나는 든든한 언니이자 엄마의 역할이 되어준다. 동생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도 지어주고, 동생이 아프면 손수 치료도 해준다. 하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가족과의 식사를 새로 생긴 동생들과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여행도 같이 가게 된다. 새로운 가족과의 가족여행.


하지만 이 새로운 가족도 마냥 즐겁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같은 모습으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같이 먹으며 자며 어느새 날 선 감정들은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가족을 계속 이어가자고 서로 약속한다.


바로 이 부분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어떤 집. 어떤 가정이건 100%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다투고 싸워도 서로 나누고 살을 부대끼며 미래를 함께 약속하는 것. 그것이 진짜 집.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감정을 통해 어른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전작인 <우리들> 도 그랬지만, 윤가은 감독은 어린아이들의 감정표현과 심리묘사에 정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연출자 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단순히 많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어떠한 기술을 습득하고 특정한 자격을 갖추어서 나올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개봉 전 '우리 집 촬영 수칙'에 관한 글을 접한 적이 있다. 그리고 윤가은 감독의 여러 인터뷰와 여기 브런치에 올라오는 제작기를 꼼꼼히 보았다. ' 아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대하는 그 태도와 자세는 RESPECT 란 단어를 써도 모자를 듯 싶다.


물론 아이들의 연기도 너무나 훌륭하다. 또한 같이 나오는 성인 연기자들의 연기도 아이들의 호연을 탄탄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역배우들을 단순한 아역이 아닌 온전한 한 명의 배우로 여기며 존중했을 때 그 배우들에게서 놀라운 것들이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윤가은 유니버스'의 다음이 기다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아이들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은 이 아저씨에겐 너무나도 벅찬 일이니까.




가정을 이루고 한 집에 같이 산다는 일은 마치 여행과도 같다. 그것도 아주 긴 여행 말이다.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서로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 그래도 갔다 오면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는 일도 있다. 이제 가정이라는 진짜 여행을 위해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다.

아! 우선 밥부터 먹고.



PS: 좀 더 진한 여운을 위해서 엔딩 크레디트까지 보고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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