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Jun 01. 2020

<레이디 맥베스>

플로렌스 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에서 한 명의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큼이나 될까. 20%? 50%? 80%? 글쎄, 뭐 영화마다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가끔가다 100%에 가까운 비중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이 있다. 여기서 비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단지 등장하는 횟수나 분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배우의 존재감과 연기가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배우를, 그런 영화를 봤을 때 영화에서 차지하는 배우의 비중이 100%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가까운 예로 <조커>의 호아퀸 피닉스가 생각이 난다.


몇 년 전에 개봉했지만 이제야 보게 된 <레이디 맥베스>. 그리고 영화의 주연배우 '플로렌스 퓨'. 이 영화는 주연배우인 플로렌스 퓨의 존재감을 빼고서는 얘기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기 전 봤던 그녀의 출연작들을 통해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존재감과 연기력은 놀라움 그 이상이다. 하드 캐리라는 말도 성에 안찬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로 한번 예를 들어보자. 야구라고 치자. 8-7로 이긴 경기에서 혼자 8타점을 쓸어 담은 경우다. 축구라고 해볼까. 4-3으로 이긴 경기에서 해트트릭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OM에 뽑힌 경우다. 농구라고 한다면 40 득점-20 리바운드-10 어시스트의 트리플더블급 활약이다.


내가 이토록 플로렌스 퓨를 찬양하는 이유는, <레이디 맥베스> 란 영화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퓨의 연기가 아니라면... 이 영화는 뻔한 치정극이 되었을 테지만, 플로렌스 퓨라는 배우 한 명이 영화를 몇 단계는 더 끌어올린다.


돈 많은 지주에게 팔려간 소녀가 욕망에 눈을 뜨며 자신의 주변을 파괴하는 이야기


얼핏 들어도 상당히 올드한 냄새가 나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부잣집과 지주의 모습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여주인과 하인이 불륜 또는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도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게 소녀의 억압과 분출, 욕망과 집착을 보여주기 위한 빌드업이겠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해도 매우 낡아빠진 이야기다. (소설 원작임을 감안하더라도)


하지만 소녀의 억압 - 욕망 - 광기에 이르는 변화를 플로렌스 퓨는 기가 막히게 표현하면서 이 영화를 건져 올린다. 억압된 욕망이 분출되어 걷잡을 수 없는 집착에 이르기까지. 순진한 소녀가 불같은 여인이 되기까지. 그 감정과 변화가 이 영화의 주제이자 핵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했다면 이 영화는 별 볼 일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로렌스 퓨는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한다. 심지어 그녀는 1996년생. 영화가 나왔을 당시 20살의 어린 나이였다.




호아퀸 피닉스의 <조커>가 배우의 연기력 말고도 얘기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면, <레이디 맥베스>는 플로렌스 퓨의 연기 말고는 할 만한 얘기가 마땅치 않다. 무엇 하나 돋보이는 부분이 없다. 이 영화의 완성도는 전적으로 플로렌스 퓨 혼자서 책임지고 있다. 그 덕분에 평범한 작품이 수작의 반열에 가까스로 올라서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배우 한 명의 비중은 100%를 넘어 120%에 가깝다. 하지만 배우를 캐스팅하고 활용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일 테니, 연출자의 역량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딱 봐도 당차 보이는 이 '작은 아씨' (작은 아씨들)는 영화계의 '히어로'(블랙 위도우)를 넘어 '여왕' (미드 소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스카가 그녀에게 손을 들어줄 날이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ps: 이 영화는 러시아의 문학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무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익스트랙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