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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un 30. 2020

<#살아있다>

#분장이 아깝다

코로나 시대 이후, 오래간만에 극장에 활기가 도는 듯하다. 개봉을 미뤘던 영화들이 하나둘씩 선을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침입자> (6월 4일 개봉), <결백> (6월 10일 개봉), <#살아있다> (6월 24일 개봉)가 잇따라 개봉하며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극장가에 반가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 중 <#살아있다>는 좀비물이라는 인기 장르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개봉 전 관심 끌기에 성공했다. <부산행>부터 <킹덤>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좀비물은 이제 확실한 '인싸 장르'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유아인, 박신혜라는 나름 검증된 카드. 게다가 주연배우 유아인은 손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하며 프로모션에 성실히 임했다. 여러모로 <#살아있다>는 코로나 이후 첫 흥행작이 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동안 좀비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왔다. 기차를 탔다가, 조선시대로 가기도 하고, 서울에도 나타났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의 옷을 입고 출몰되었었다.


1. 공간의 특수성

<#살아있다>는 서울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참 재미있다. 한없이 독립적이지만, 또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준우(유아인)는 가족이 모두 외출한 집에서 홀로 지내며 목숨을 부지중이다. 문만 열면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준우가 싸우는 것은 집 밖에 있는 상대가 아닌 집안의 고독이다.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이 좀비보다 더 무섭다. 이웃사촌이라는 옆집 사람은 좀비가 되어 자신을 공격한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그가 소통할 수 있는 건 인터넷, 전화, tv, 드론 같은 디지털 도구들이다.


영화 초반에 극명히 드러나는 건 이런 고독과 외로움의 정서다. 다른 좀비 영화들이 달리고 쫓기고 싸우는 속도전에 치중한다면, <#살아있다>는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묵묵히 '존버'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유아인 배우가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제목처럼 혼자 살아남기의 고군분투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집들 중 과연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생존자는 준우뿐 만이 아니었고, 결정적인 순간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힘차게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2. 믿었던 장르의 배신

좀비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 입장에서는 효자에 가깝다. 그 특유의 세계관과 설정들. 기괴하면서도 오싹한 분위기. 다양한 장르로의 변신합체 가능. 이 친구들에게 열광하는 마니아들을 위한 작품부터, 좀비린이 들을 위한 순한 맛 버전의 작품까지 그 범위도 매우 넓다. 이제 한국에서도 좀비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좀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고, 상업적으로 대박이 난 작품들도 다수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좀비라는 단어가 일종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이토록 매력적인 소재인데, <#살아있다>는 결론적으로 봤을 때 좀비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분명 이 영화의 가장 큰 위협은 좀비인데, 좀비로부터 살아남는 게 가장 큰 목표일 텐데, 어쩐지 이 영화에서 좀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좀비가 여자 한 명도 어쩌지 못하고, 자전거 한대도 뚫지 못하는 처지라면 굳이 '살아있다'라고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귀여운 액세서리 같은 손도끼로 손목이 잘릴만한 좀비라면 이 친구들을 무서워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서 ,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서 둔 무리수가 장르영화로서의 매력을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좀비라는 크리쳐에 대해서 얼마나 고심하고 해석하여 창조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전혀 고심한 흔적이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좀비의 특성 (씹고 뜯고 맛보고 옮기고)만 살짝 흉내 낸 정도다. 이 영화를 과연 좀비 영화라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다. 그 어떤 방향으로 봐도 이 영화는 좀비 영화 장르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힘들게 분장하고 열심히 뛰어다니신 보조출연자들의 노력이 아깝기만 하다.


3. 굳이 좀비일 필요가 있었나

사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주요 감상 포인트다. 좀비들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에서 벗어나 끝까지 살아남는 것. 후반부로 갈수록 이 영화는 재난영화의 양상을 띠고 있다. 탈출 -> 구조의 전형적인 기승전결이 꼭 재난영화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꼭 좀비를 선택해야만 했을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에서 좀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탈출하는 과정도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간다. 긴장감이나 스릴 같은 극적인 재미가 <#살아있다> 속에서는 죽어있다.


다른 위협도 많이 있다. 지진, 태풍, 기후변화, 독가스, 테러조직, 범죄 집단. 생각해보면 매력적이고 위협적인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살아남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됐다. 아니면 장르에 대한 좀 더 철저한 해석이 필요했다.


'왜 하필 좀비를 택했니. 수많은 소재들 중에서. 그냥 스칠 좀비. 한 번도 원한적 없어'



유아인 배우는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의 정서가 세팅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능력 덕분이다. 그는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작품에서는 확실히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사도세자, 재벌 3세 조태오, 버닝의 종수 모두 그 아니면 안 될 인물들이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조금 다르다. 유아인 배우는 여전히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지만, 어딘지 모르게 영화의 분위기 와는 착 달라붙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만큼은 유아인 배우의 연기력이 낭비되고 있다. 아웃도어 용품 cf 찍는 여배우 옆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탈출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살아있다>는 개봉 전부터 여러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코로나 이후의 본격적인 상업영화. 유아인의 복귀. <킹덤>으로 폭발한 k-좀비의 기세. 그리고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다는 점까지.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더라도 흥행을 하기 위한 마중물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껍질을 까 보니, 영화의 완성도는 심히 기대를 밑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꼭 흥행이 완성도에 비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살아있다>가 침체된 극장가를 살릴 수 있을까.


ps: 4개월 만에 극장 갔는데 이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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