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Jul 19. 2020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구태여 과거를 꺼내 이야기하는 이유

영화 <밤쉘> 은 2018년에 있었던 폭스 뉴스 채널의 성스캔들을 다루는 영화다. 폭스 뉴스의 회장인 로저 에일스와 여자 앵커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다. 문자 그대로다. 세상을 바꾼 것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에 여자 앵커들의 '선언' 은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년이 넘는 세월에 이르기까지 감춰져 있던 추악한 그림자가 세상에 '쿵' 하고 던져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세상이 다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비단 폭스의 로저 에일스뿐만이 아니었다. 2017년 10월에는 할리우드의 큰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가 있었다. 이것이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었다.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끊임없는 폭로가 이어졌다. 배우와 작가 같은 문화예술계부터 정치계 인사들까지. 폭로가 이어질수록 여기저기서 충격과 실망 배신감의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구태여 오래전 일들을 꺼내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 영화에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을 한다. 폭스 뉴스의 앵커인 그레천 컬슨 (니콜 키드먼), 메긴 켈리 (샤를리즈 테론). 이 두 명은 실존 인물이다. 그리고 케일라 포스피실 (마고 로비)은 허구의 인물이다. 그레천 컬슨의 선언을 시작으로 같은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선언이 이어지면서 로저 에일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영화는 여성들이 폭로를 결심하고 폭탄을 던지기까지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 충격적인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치고는 다소 밋밋하다. 세 명의 주인공에게 골고루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사건의 핵심은 무게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마고 로비의 캐릭터는 매우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극 중의 악역인 로저 에일스의 추악함을 더 드러내고자 억지로 만들어낸 캐릭터에 가깝다. 마고 로비의 캐릭터를 통해 '굳이' 사건의 전말을 '재현' 하는 장면은 매우 일차원적인 연출이 아닐 수 없다. 그럴 시간에 실제 인물인 그레천과 메긴의 얘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실화를 소재로 한 만큼 실화를 더 깊이 있게 다루었어야 했다. 그런데 허구 인물의 애먼 드라마 때문에 이야기가 한 곳으로 모이지 못한다. 다른 여성들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영화적으로는 점점 절정을 향해 가는 순간에도 허구의 인물 때문에 김이 팍 빠져버린다. 실제 인물들에게서 충분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였을까. 쓸데없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필요치 않은 곳에 힘을 쓴 느낌이다.


결국 불필요한 드라마 때문에 실화 소재의 영화가 주는 매력을 온전히 못 살리게 된 것이다.



<밤쉘>의 완성도는 조금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폭탄선언의 시발점이었던 그라첸 컬슨은 폭로전 변호인들과 함께 계속된 만남을 가진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 한 명의 변호인이 그녀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이렇게까지 해서 원하는 게 뭐죠?"
"원하는 거요? 그런 행동을 안 하는 거요"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보상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그렁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뿐이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 어쩌면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이러한 움직임과 목소리를 담아낸 것이 영화 <밤쉘>이다.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밤쉘> 이란 영화 자체가 또 하나의 '미투'인 셈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한 유명 정치인의 죽음이 있었다. 사건의 진위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여전히 의혹만 있을 뿐이다. 다만 무조건적인 편 가르기는 좀 안타깝다. 사망자에 대한 추모, 피해자에 대한 위로, 정확한 진상 규명이 먼저 아닐까. 한 사람의 용기와 결심이 정치적인 불쏘시개로만 이용되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과거를 꺼내 이야기해야만 한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통해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옳은 일이지 않을까.


지나간 일이라고 계속 덮어만 둔다면 그 과거는 멈추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일이 될 것이다.



PS: 어떠한 정치적 방향이나 특정성별에 대한 옹호 또는 비판이 없는 글임을 분명히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