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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ul 20. 2020

<반도>

나름 성공적인 복귀

4년 전 <부산행> 이 나올 때만 해도 나는 의심이 많았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가움은 컸지만 우리나라에서 좀비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마니아들만 즐기는 장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흥행은 안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부산행> 은 10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016년 최고의 흥행은 한국형 좀비물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제 한국에서 좀비는 더 이상 소수의 취향이 아니다. 'K-좀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영화&드라마 시장에 있어 엄연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런 엄청난 흥행을 떠안은 속편의 숙명은 참 가혹하기만 하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영화계 속설은 웬만하면 거의 다 들어맞는다. 내로라하는 명작도 피하지 못한 이 숙명을 <부산행> , <반도>는 피할 수 있을까.  



<서울역>에서 시작된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은 서울-> 부산을 거쳐 이제 대한민국 전국을 좀비의 판으로 만들었다. 부산에만 도착하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싸우던 <부산행> 과는 무대부터가 다르다. 더 넓어진 환경에서 전편과 같은 긴장감을 보여주려면 <부산행> 과는 달라도 뭔가 달라야 했다. 필연적으로.



1. '반도'라는 의미

반도란 지리적으로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지형을 말한다. 한반도, 이베리아 반도, 발칸 반도 등등. 3면은 바다이지만 1면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섬나라에 비해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는 다르다. 유일한 육로인 북쪽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섬나라와 다를 바 없다. 영화 <반도>에서도 이런 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대놓고 제목을 <반도>라고 지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 후 4년. 한국은 정부가 무너진 상태이고 세계로부터 고립이 되어 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다른 나라들이 한국과의 모든 왕래를 끊어 비린 결과다.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고립에 대한 내용이 영화 초반부에 밑그림으로 그려진다. 영화 제목과 함께 지리적 특징을 아주 잘 살린 밑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정석 (강동원)과 그의 일행은 수천만 달러의 현금을 찾기 위해 이 죽음의 땅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아무도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이곳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들어왔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확실히 그 부분은 아니다.


2. 인상적인 카체이싱

어쨌든 한반도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는 목적인 돈을 챙기고 다시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곳은 좀비가 점령한 좀비랜드다. 발에 치이듯 많은 그 괴물들을 잘 피해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을 방해하는 것은 좀비가 아닌 사람이었다.


좀비 이후의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다수의 영화들이나 드라마들을 보면 좀비 vs 인간보다는 인간 vs 인간의 대결을 더 많이 보여준다. <반도> 도 여지없이 그 공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반도>가 선택한 방식은 '카 체이싱'이다. 영화에서 그 어떤 부분보다 이 차량 액션신에 공들인 티가 많이 난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도>의 차량 액션신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바로 <매드 맥스> 다. 한껏 개조해 하나의 무기로 탄생한 차량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인간 vs 인간의 싸움은 이러한 차량 액션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매드 맥스> 나 <분노의 질주> 같은 카체이싱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완성도가 꽤 놀랍다. <반도>의 전체 분량 중에 차량 액션씬만 떼어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별 5개짜리다.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액션 시퀀스를 뽑아냈다고 본다.


3. 구교환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즐거움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배우의 발견이다. 잘 몰랐던 배우를 발견한다거나, 원래 아는 배우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다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배우의 놀라운 연기력을 발견한다거나. <반도>에서는 구교환이 그랬다.


그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미 그는 <꿈의 제인>이나 <메기> 같은 영화를 통해 독립영화계에서 강동원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상업영화, 그것도 대성공을 거둔 영화의 속편에 출연을 한 것이다. 그의 출연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그가 맡은 역할인 서 대위는 이 영화의 악역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악역과는 뭔가 다르다. 대놓고 악역이라고 드러나는 황 중사 (김민재) 와는 결이 좀 다르다. 이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들끓는 영화의 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와는 매우 이질적인 캐릭터인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에 한반도의 느낌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무 희망도 없는 공허한 현실을 서 대위라는 캐릭터가,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참 알맞게 표현해 주고 있다.



<부산행> 4년 후,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우려했던 것에 비해 나름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더 넓어진 무대를 <매드 맥스> 벤치마킹으로 채운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넘쳐나는 좀비물 속에서 장르의 특수성과 재미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신파'라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을 결국 넘지를 못한다. 신나게 잘 달려놓고 왜 마지막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쩔 수 없었다면 좀 간략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이 되다가 마지막 10분을 남겨놓고 마치 슬로비디오를 틀어 놓은 듯 한없이 축 처진다. 나는 속으로 깊은 탄식을 했다. 참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끝이 참 아쉬운 영화다.



그럼에도 <서울역>부터 이어진 연상호 감독의 좀비 유니버스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한국영화에서 이러한 필모그래피는 꽤 이례적이다. 통일된 소재와 통일된 세계관으로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좀비 유니버스가 계속 이어질지 여기서 끝날지는 모르겠다. 한반도에 'k-좀비' 바이러스를 가지고 온 연상호 감독만이 답을 알고 있겠지. 나는 한번 더 기다려 보련다.



ps: <부산행>의 속편이지만, <부산행> 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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