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Aug 14. 202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흉내는 잘 냈다.

'다만 신파에서 구하소서'.  이 영화를 보기 전 나의 바람이었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점인 '신파'. 장르 불문하고 마치 병처럼 전이되는 신파가 이 영화에서는 없기를 바랐다.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를 볼 때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것이었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규모와 품질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기술적인 진일보가 있었고, 이전의 영화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었다. 남이 만드는걸 부러워만 했던, 그런 장르의 영화들을 이제는 한국도 제법 그럴싸하게 만든다.


어느덧 한국영화는 그 속에서 할리우드의 '냄새'를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발전했다. 물론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말이다. 하지만 항상 신파 바이러스가 영화에 침투했고, 기대했던 작품들이 그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제는 한국영화의 고질적 문제를 어떻게 잘 처리하는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1. 신파는 없지만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한국 영화 특유의 신파스러움은 묻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부성애나 형제애 같은 감정의 묘사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건의 발단과 동기로만 사용된다. 주인공인 인남 (황정민)의 부성애는 인남이 레이 (이정재)와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 중 하나이다. 부성애의 감정은 시종일관 피로한 인남의 표정처럼 건조하게 그려진다. 인남의 감정을 통해 어설프게 관객의 심금을 울리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인다. 계속 싸워야 하는 동기만 적당히 제공할 뿐이다.


형제를 잃은 레이는 어떤가. 그가 인남을 쫓는 이유는 인남이 그의 형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싸움이 거듭될수록 그 동기는 희미해진다. 영화 속 레이의 대사를 빌어 얘기하자면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이유로 그는 인남을 쫓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애끓는 감정 같은 건 애당초 관심 밖이다. 이유나 목적 없이 오로지 싸움과 죽음만을 쫓는 레이의 캐릭터만큼이나 이 영화의 방향성은 확실하다.


영화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설정한 탓에 우려했던 신파는 없다. 혹시나 하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영화는 배신하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닌 신파가 나올까 말까 긴장하고 본다는 게 다소 어이없긴 하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영화에 적잖은 배신을 당했었다. 서두에 얘기했듯이 이 영화는 제발 안 그러기를 바랐다.


이 영화에 대한 실망과 배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2. 흉내는 잘 냈다

이 영화를 보면 여러 영화들이 떠오른다. 또한 여러 인물들이 떠오른다. '제이슨 본' '테이큰' '존 윅'.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익스트랙션'. 원빈의 '아저씨'까지 생각이 난다. 확실히 이 영화는 우리가 열광했던 기라성 같은 액션 영화들, 그 뒤를 잇고자 함이 틀림없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방향성은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계보를 이을만한가. 포스터에 쓰인 문구처럼 '본 적 없는 액션의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가.


포스터에 쓰인 문구를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답하자면 이 영화의 액션은 매우 많이 본 적 있는 액션이다. 액션의 낯이 상당히 친숙하고 꽤 구면이다. 위에 언급한 액션 영화들은 서로 같은 듯 보여도 각자만의 '색깔' 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고, 마니아층도 두텁게 형성되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기존의 액션 영화들과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다. 액션 시퀀스의 스타일과 형식이 기존의 액션 영화들을 그대로 답습할 뿐. 이 영화만의 어떤 특장점이 전혀 없다. 게다가 액션의 총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액션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마저도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다가 보여주는 액션 장면은 애피타이저의 느낌이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식사가 끝난 느낌. 하지만 그 애피타이저 조차도 익숙한 조미료 맛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은 부족한 서사라는 단점을 더욱 크게 부각하고 만다. 액션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액션은 좋은데, 스토리가 별로야". 하지만 훌륭한 액션 영화는 스토리의 부족함을 철저히 메워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액션의 퀄리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승부를 보는 것이다.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장점을 극대화하여 장르의 미덕을 살리는 것이 액션 영화의 정확한 방향성이다.


만약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방향성이 단순한 모방에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액션의 새로운 스타일을 구현하기보다는 기존의 액션 영화들을 잘 따라 해서 만드는 것. 그게 목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성공적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단순히 액션 장면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뼈대나 인물 설정과 그 배경까지 기존의 액션 영화들의 모양새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 정말 그럴듯하게 흉내는 잘 내고 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 영화는 따라 하기 하나는 진짜 잘 해내고 있다.



3. 그래도 밉지 않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확실한 목적과 방향성으로 한국영화의 고질적 문제를 피했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부분이 기대만큼 나오지 못했다. 액션은 충분한 리액션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단점만 더욱 부각되고야 말았다. 이대로라면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액션 영화들처럼 '액션은 괜찮은데 스토리가 별로인 영화'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그 '괜찮은 액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한국영화라는 좁은 우물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 영화의 액션은 그 퀄리티가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 제이슨 본이나 존 윅과 비교하지 않고 본다면, 나름 한국 액션 영화 장르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물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만약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더라면 더 보여줄게 많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내내 아쉬웠던 애피타이저 같은 액션도 좀 더 맛있게 바뀌지 않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제작자나 연출자도 등급 상향을 원치 않았을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아쉬움과 만족이 공존하는 영화다. 아쉬움이 더 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나름의 희망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모든 영화가 그런 것 같다. 기대와 우려 중 어느 쪽을 최소화시키고, 어느 쪽을 극대화시킬 것인가. 이 영화는 나의 기대였던 '다만 신파에서 구하소서'는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하지만 그저 구한 것에만 만족하는 영화가 되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말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앞에 나오는 구절은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왠지 계속 시험에 빠지게 만든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영화적인 의미로 그러하다. 한국 영화에 대해 계속 의심하게 만드니 말이다. 영화가 보여준 작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해 자신 있게 '아멘'(긍정의 대답)이라고 답할 수 없는 이유다.



PS: 박정민은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연기력이 넘치니 그 또한 아이러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