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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28. 2020

<악마의 씨>

오컬트의 씨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에도 시작이 있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이 그 시작이었다. 최초 영화라는 문화예술이 태어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물론 장르란 말이 처음에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공포 영화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찾아보니 1896년이라고 한다. 당연히 무성영화였고, 3분짜리의 짧은 영상이었다. (출처 https://blog.naver.com/kds941014/221310944506) 그리고, 최초의 유성 공포영화의 등장은 1920~1930 년대 정도쯤이다. 영화사 최초로 유성영화가 나온 시기와 맞물린다. 1928년에 최초로 유성 공포영화가 나왔지만, 현재 필름이 소실된 상태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최초의 유성 공포영화는 1931년작이다. 그 유명한 흡혈귀에 대한 영화 <드라큘라> 다. (참고 https://blog.naver.com/kds941014/221438006317)


공포영화에도 여러 하위 장르가 있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종류가 꽤 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준으로 크게 나눈다면, <새벽의 저주> 같은 좀비물, <13일의 금요일 밤> 같은 슬래셔 무비, 그리고 <엑소시스트> , <오멘> 같은 오컬트 무비가 있겠다. 물론 더 많은 하위 장르가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현재 가장 많이 보이는 공포영화 스타일로 구분해 보았다. 영화 <악마의 씨>는 이 중에서 오컬트 장르에 속하는 공포영화다.



오컬트 (occult)라는 말은 라틴어 occultus에서 유래되었다. 신비학이라는 뜻으로 번역이 된다. 신화나 전설, 미신 등을 믿으며 영적 현상을 탐구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공포영화에서 오컬트는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해 표현한다. 오컬트 영화에서는 정체불명의 살인마가 우리를 쫓아오지 않는다. 오컬트 영화에서는 기괴한 짐승이나 괴물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쓴 탈출도 없다.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육탄전도 없다. 몇 년 전 <컨저링> 개봉 당시의 홍보문구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오컬트 영화에서 공포의 매개가 되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다. 주인공 또는 그의 가족이 갑자기 아프다거나,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한다거나, 집에 가구들이 멋대로 움직인다거나. 이런 알 수 없는 현상들을 배치해서 서서히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이다.


오컬트는 사탄과 악마 숭배, 주술, 종교적인 의식. 이런 것들을 키워드로 한다. <엑소시스트>, <오멘> 이 대표적일 것이다. 최근작으로는 <유전>, 한국영화로는 <검은 사제들> 이 한 핏줄에 속하는 영화다. 위에 언급한 <컨저링> 은 넓게 보자면 오컬트 장르의 공포영화이지만, 전통적인 오컬트와는 결이 좀 다르다. 현대적인 오컬트라고 할까. 고전의 맛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은 2017년에 나온 <유전>이다. 물론 <컨저링> 도 공포 영화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1968년에 나온 <악마의 씨>는 이런 영화들의 조상이 되는 영화다. 우리가 오컬트 영화를 볼 때 떠올리는 어떤 느낌이나, 오컬트 영화의 공식을 정립한 영화다. <악마의 씨>가 오컬트 영화의 씨가 된 것이다.



<악마의 씨>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영어 원제는 <Rosmary's baby>. 로즈메리의 아기가 대체 무엇일까가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일 텐데, 사실 한국어 제목이 스포를 한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영화의 모든 연출이 이미 짐작을 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피 한 방울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엄청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로즈메리 역을 맡은 미아 패로우의 연기, 로만 폴란스키의 세련된 연출, 음악, 조명등 탁월한 미장센이 50년의 간극을 지워버린다.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 나쁜 긴장감을 주고 있다.


명불허전. 이 영화의 명성은 내가 영화를 처음 좋아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고,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인생 공포영화라 할 수 있는 것들의 뿌리를 몰랐을 테니까 말이다. 모든 것에 시작이 있듯, 인생 작품에도 그 원류가 되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엑소시스트>부터 최근에 본 <유전>까지 <악마의 씨> 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하면서 봤다. 그건 그대로 색다른 감상이었고,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고전을 봐야 하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닐까.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화질도 안 좋고, 녹음 상태도 별로고, 촬영이나 편집도 유려하지 못한데 굳이 보는 이유는 '시작과 뿌리'를 보기 위함이다. 세상에 혼자 태어나는 작품은 없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에서 영향을 받았을 텐데 그 '영향의 기원'을 찾아가는 일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ps: 로만 폴란스키는 천재 같다. 인성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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