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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Sep 12. 2020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고약한 말장난

하나의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과 해석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본 사람이 10명이라면 그 10명이 다 생각이 다를 테다. 그것이 영화가 주는 매력이다. 또한 그것이 숙제가 되기도 한다. 영화 제목을 검색창이나 유튜브에서 검색하다 보면 자동 완성되는 단어가 있다. '(영화 제목) 결말 해석' '(영화 제목)의 숨은 뜻' 같은 네티즌들과 유튜버들의 게시물 말이다. 지나치게 궁예질 하는 게시물도 있지만, 날카로운 리뷰나 해석도 많이 있다. 어쨌든 하나의 영화를 두고 이리도 다양하게 해석된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목적과 방향성이 뚜렷한 일부 장르 영화를 빼고는 거의 모든 영화가 해석을 필요로 한다. 소위 '열린 결말'이라 부르는 영화가 요즘 대세다. 여러 가지의 복선과 상징들. 깨알같이 심어놓은 이스터에그들. 등장인물들의 의미심장한 표정과 대사들. 영화를 많이 섭렵하고, 관련된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배경지식이 없다면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도 많다. 분명 최근에 나오는 영화들은 이러한 경향이 많다. 아는 만큼 재밌게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와 유튜버에 게시물을 올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클릭해서 보고 그러나 보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는 아디까지 열려 있어야 할까. 영화를 본 개인이 해석해야 하는 몫은 어디까지 일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근원적인 물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넷플릭스의 신작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온갖 추상과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가 '어떻다'라는 느낌도 가지기 힘들 정도다. 영화 공식 정보에는 이 영화의 장르를 호러&스릴러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해당 장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마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도 영화의 장르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정체불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음울한 분위기가 그나마 호러 스릴러에 가깝기도 하겠다.


이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주인공인 여자가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고 하는데 딱히 벌어지는 일 같은 건 없다. 영화의 90% 이상은 주인공과 남자 친구의 대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머지 10%는 남자 친구의 부모님과 잠깐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여직원의 몫이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장면도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길을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쉽게 가늠하기 힘든 대사들은 그저 고약한 말장난 같았다. 영화 속의 상징들을 해석하는 건 100% 보는 사람의 몫이다. 머리가 아팠다. 2시간이 살짝 넘는 러닝타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감상이 아닌 독해 수준의 영화는 취미활동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에는 역효과였다.


나는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이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건가?"라고 대략적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여러 개의 블로그, 여러 개의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난 후에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나 열심히 후기에 대한 글과 영상을 찾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그런 것을 잘 찾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영화를 본 후 돌아오는 나의 감정과 감상과 생각이 중요한 것이지, 굳이 다른 사람의 해석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그런대로 놔두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해석 중에 어느 것이 100% 정답이다 라는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다른 능력자분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됐었다. 여러 능력자들의 의견을 더했을 때 드디어 이 영화의 진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어렵게 얘기할 일인가.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영화를 본 후 해석에 대한 개인의 몫은 어디까지일까. 이 영화에서 그 몫은 거의 100%에 가깝다. 흔히 얘기하는 '열린 결말'의 영화들은 결말만 열려있다. 영화의 시작과 중간에서 보여준 나름의 단서들을 활용해 해석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말에 대한 즐거운 토론보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궁금증만 남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번에 이해하고 깨달아서 영화를 좋게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열린 결말의 영화는 아니다. 상징과 은유를 파악하면 이 영화의 결말은 쉽게 도출된다. 한 남자의 정신과 심리 상태를 지독하고도 지루한 화법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열리고 닫히고 할 결말 같은 건 없는 영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렵게 얘기해야만 했을까. 물론 창작자의 표현 방식은 존중해야 맞는 것이겠지만, 영화라는 것은 엄연히 대중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다소 불친절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이야기해도 예술적 성취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영화가 지나치게 많은 해석과 첨언이 필요하다면 그게 과연 좋은 영화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메시지와 의미를 깨닫고 난 뒤에 나는 마치 해바라기의 김래원처럼 외쳤다. "꼭 그렇게 어렵게 얘기해야지만 속이 후련했냐!"  


이 영화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은 없을 듯하다. 이제 그만 리뷰를 끝낼까 한다.



ps: 이 영화를 해석하신 수많은 리뷰어 능력자분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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