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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10. 2020

의정부고 학생들 마음은 어떨까

정작 그게 더 궁금했다.

방송인 샘 오취리의 sns 게시물 하나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의정부고 학생들의 졸업사진 하나가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에 큰 화제가 되었던 인터넷 밈 '관짝 소년단'을 패러디한 것이 발단이었다. 샘 오취리는 학생들의 이러한 퍼포먼스가 인종차별적 행위라며 비판하는 게시물을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오취리의 발언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찬반 양극단에서 네티즌들의 설전이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이 퍼포먼스의 당사자들인 의정부고 학생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떤 마음일까.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정부 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은 사진 맛집으로 유명하다. 매년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풍자, 디테일한 코스프레까지. 고등학생들의 손과 머리에서 매년마다 대단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의정부고 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졸업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관짝 소년단을 패러디한 그 친구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가 막힌 코스프레로 학창 시절에 굵직한 추억을 남길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게 선택된 관짝 소년단 패러디. 최대한 고증에 충실하기 위해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의상이나 소품들도 꽤나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이것이 어떤 논란을 일으킬지 몰랐을 것이다. 아니, 논란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샘 오취리의 발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은 오취리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훨씬 더 많다. 많은 한국인들이 학생들의 졸업사진이 흑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진만 봐서는 그렇다. 흑인 분장을 하고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나 표정을 지은 것도 아니며, 오히려 최대한 원전에 가깝게 재현해 내려는 흔적이 비하보다는 '리스펙트'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거 어디까지나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생각이다. 단순히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것도 이제는 흑인을 비하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이미 서구권에서는 몇 년 전부터 금기시하는 부분이다. 학생들이 미처 모르고 한 노력이 알고 보니 굉장히 민감한 이슈였던 것이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오래도록 똑같은 피부색의 사람들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소 무지하고, 당연히 그에 대한 교육도 전무한 게 현실이다. 샘 오취리는 이에 대해 차별 당사자로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2020년의 세계에서 흑인 분장은 인종차별적인 행위가 맞다. 샘 오취리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샘 오취리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그의 의견 표출 방식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그가 '무지에 대한 교육' 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좀 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의정부고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따로 컨택해 인종차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을까.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19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유명인이 성인도 아닌 미성년자를 공개적인 심판대에 소환했다는 것. 이 부분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격한 감정을 퍼부었다. 게다가 굳이 영어로 된 글까지 올리고, 본문과 상관없는 해쉬태그를 달아 한국인들의 화를 더 돋웠다.


분명 한국인들의 지나친 반응도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기지만, 샘 오취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결국 우리 사회가 아직 이런 문제들을 건강하게 논의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샘 오취리의 방식도 매우 아쉽다. 오취리는 그 어떤 외국인 보다도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방식이 더더욱 안타깝다. 차별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이 도리어 또 다른 차별과 폭력으로 돌아오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퍼포먼스 당사자들인 의정부고 학생들의 마음이. 과연 그들은 현재의 소동을 보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 "아 내가 미처 몰랐네. 이제부터라도 조심히 하고 인종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

2. "그냥 재밌자고 한 건데, 왜 이렇게 x랄 들이야"

3. "추억으로 남기려 한 건데, 평생 상처로 남을 듯.. 흑인들이 밉다.."


학생들이 모두 1번을 선택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2번이나 3번을 선택한다면 매우 슬프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며칠간 벌어졌던 소모전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샘 오취리가 바랐던 것은 의정부고 학생들이 나아가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일 테니까.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PC(Political Correctness)의 큰 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대전제 아래 유색인종,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가치관과의 충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다.


소수자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프로 불편러'로 치부되기도, '오피니언 리더'로 세워지기도 한다.


이번 경우에 샘 오취리는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프로 불편러로 제대로 낙인찍혔다. 어쩌면 몇 년간 쌓아 올린 방송인 커리어도 위태롭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했는지 샘 오취리는 재빨리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의 진심이야 모르겠지만, 바로 전날의 그 패기와 소신은 온데간데도 없이 사라졌다. 하루 만에 꼬리 내릴 일을 왜 시작했을까. 다수의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과연 샘 오취리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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