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공모전에 응모한 글 *
20005년 4월 23일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을 거쳐 ‘무한도전’에 이르기까지 총 615회 방영을 했다. 2018년 3월 31일이 마지막 방송이었으니 자그마치 13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몇 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논란도 적지 않았다. <무한도전>이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며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재석의 존재감과 방송인으로서의 그의 능력 때문이다. 멤버들이 숱하게 들락날락하는 와중에도 무게중심을 꽉 잡고 있던 그가 있었기에 다른 멤버들도 그의 지휘 아래 활약할 수가 있었다. 1회부터 615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멤버는 유재석이 유일하다. 김태호 PD와 함께 국민예능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름이 바로 유재석이다.
본론에 앞서 이미 종영된 프로그램을 언급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놀면 뭐하니?>의 외양(外樣)이 <무한도전>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의 방식은 이런 형식이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출연자들에게 어떠한 미션이 주어진다. 출연자들이 그 미션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주어지는 미션은 대개의 경우 출연자들이 처음 접해보는 분야의 것이다. 댄스스포츠, 레슬링, 조정, 봅슬레이 등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물해 주었다. <놀면 뭐하니?>의 경우 드럼, 트로트, 라면과 치킨, 하프, 혼성그룹, 걸 그룹 제작자까지 유재석 본인에게는 새로운 분야를 계속 도전 중이다.
아마도 두 프로그램의 브레인이 김태호 PD라는 동일인물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6~7명의 정규 멤버들이 도전하는데 에서 1명이 도전하는 것으로 바뀐 것 빼고는 거의 똑같다. 시청자들로부터 ‘유재석이 혼자 하는 무한도전’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괜한 일은 아니다. 물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특별 게스트가 출연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나온 싹쓸이나 환불원정대처럼 여러 사람과의 협업도 진행한다. 하지만 실상은 유재석의 원맨쇼에 가깝다. 유재석 1인의 또 다른 무한도전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도전을 시작하는 방식도 과거 <무한도전>과 똑같다. 출연자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미션을 실행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유산슬 라면의 시작이 그랬다. 또는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진짜 미션이 되어 돌아온다. 유케스트라, 유르페우스처럼 말이다. 김태호 PD가 에피소드를 만들고 출연자를 다루는 방식이 똑 닮아있다. 이 정도면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는 배다른 형제나 다름없다. 아니, 어쩌면 쌍둥이 일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느꼈던 감정을 <놀면 뭐하니?>를 통해서도 느끼고 있는가?
현재 <놀면 뭐하니?>는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볼 때 <무한도전>처럼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원활히 순항 중이다. 김태호 PD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무한도전> 과의 비교는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놀면 뭐하니?>는 초반에 잠시 주춤했지만, 유플래쉬 에피소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음은 물론, 화제성 면에서는 <무한도전> 못지않다. 이제 <무한도전>의 그림자는 거의 지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유재석과 김태호 PD는 <놀면 뭐하니?>를 통해 ‘부캐’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을 또 한 번 이끌고 있다. 어찌 됐건 2019년도 이후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프로그램의 주제인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도전의 사전적 의미는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경신 따위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굳이 사전을 찾지 않더라도 도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린 그런 도전의 행위와 과정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목표가 달성되고 성공하면 기쁘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기꺼이 박수를 쳐 줄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도전의 의미다. 우리가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던 이유는 그들이 멋지게 성공해서가 아니었다. 평균 이하의 멤버들이 펼치는 악전고투와 진한 형제애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재석 1인의 도전은 어떤가. 이 도전의 스토리에는 어떤 역경과 고난도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이유는 아마도 전적으로 유재석 본인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미션도 척척 수행하는 그의 능력이 새삼 놀랍다. 아마 본인도 대단히 노력하고 연습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그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성공 스토리는 더 이상 신선하지가 않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봐야 하나 생각도 든다. 유산슬의 트로트는 2019년도 내내 화제였다.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하프 연주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라면 장사와 치킨 장사도 성황이었다. 싹쓰리는 그야말로 음원 차트를 싹쓸이했다. 그리고 환불원정대의 신곡 역시 현재 차트를 맹폭 중이다. 단언컨대 앞으로 그가 어떤 미션을 수행하건 눈부시게 성공할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훤하다.
그럼에도 <놀면 뭐하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재석이라는 사람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에 기인한다. 유재석은 국민 MC다. 또한 국민 자식이며, 국민 삼촌이자 국민오빠, 국민형님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사랑한다. 사람들은 유재석이 하는 일이 무엇이건 적극적 호응과 지지를 보낼 것이다. 관심을 독차지하고 기대를 온몸에 받을 것이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애초에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기에 무엇을 하든 화제를 몰고 다닌다. 그리고 화제성은 곧 시청률로 반영된다. 유재석이 트로트를 부르고, 라면을 끓이고,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개인을 넘어 국민의 미션이 된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도 그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령 그가 실패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는 않겠지만, 보란 듯이 잘 해내길 바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이 <놀면 뭐하니?>에 거는 기대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그 기대를 120% 충족시켜주고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얘기했지만, 그때는 유재석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신은 실패를 하면 안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방송계에는 유재석이라는 신화가 있었고 <놀면 뭐하니?>도 그 신화에 탑승을 한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나오는 게스트들도 그에게 기꺼이 도움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연예인이든 비연예인이든 대한민국 일인자와 함께 한다는 것에 발 벗고 나서서 참여한다. 어쩌면 이미 승자 중의 승자인 유재석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도전에 앞서 수많은 조력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형국인데, 미션이 성공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 또 하나는 유재석의 방송인으로서의 고유한 능력이다. <놀면 뭐하니?>에서는 매 에피소드마다 수많은 게스트들이 등장한다. 유재석 본인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게스트도 있다. 유재석은 친분 여부에 상관없이 놀라운 호흡을 보여준다. 누가 됐던 정확한 웃음 포인트를 콕 집어내는 그의 능력은 왜 그가 일인자로 군림을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사실 이 부분에서 도전을 미끼로 한 하나의 토크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재석이 주도하는 장기 프로젝트 원맨쇼. 유재석의 유재석에 의한 유재석을 위한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다.
결국 <놀면 뭐하니?>의 인기는 유재석이라는 사람의 위치와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의 프로그램 향방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반복되는 신화가 계속 유효할까? 신화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어떤 차별성을 만들까? 실패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유재석 없는 <놀면 뭐하니?>는 가능할까? 여러 과제가 있겠지만 유재석의 그동안 커리어를 봤을 때 그 모든 것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놀면 뭐하니?>가 언제 종영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때까지 놀라운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과거는 특별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비슷한 성공신화를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인데, 김태호 PD의 머릿속이 자못 궁금해진다.
2019년 MBC 방송연예대상 남자 신인상은 유재석(유산슬) 에게로 돌아갔다. 신인들이 받는 부문에 데뷔 3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 방송인이 수상을 한 것이다. 다소 황당하고 이해가 어려운 수상 결과다. 신인상은 말 그대로 신인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전까지 존재감이 없다가 그 해에 활약하며 자기 이름을 알린 그런 ‘새로운 얼굴’ 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런데 이미 대상도 수차례 수상한 사람이 신인상이라니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유재석이 아닌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수상을 한 것이라고. 하지만 모든 국민이 유산슬이 곧 유재석이라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이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한 부장판사가 퇴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이 변호사를 법조계에 갓 입문한 신임 변호사라고 생각할까. 물론 유재석의 경우를 전관예우라는 악습에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도 황당하고 납득이 안 되기로는 유재석의 신인상 수상도 마찬가지다. 유재석의 프로그램에 대한 공헌도와 프로그램의 화제성 그로 인해 방송국에 이익을 가져다준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냥 대상을 수여했으면 될 일이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2019년 연말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이제야 빛을 보겠거니 하며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선배의 부캐가 차지한 상황에 또 한 번 패배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2019년의 유재석(유산슬)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인상은 신인들이 받는 상이다. 받을 사람이 없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2019년 남자 신인상은 장성규, 유산슬의 공동 수상이었다. 다른 수상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동수상까지 배려한 MBC의 의도는 무엇인가. 연말마다 치러지는 연예대상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유재석은 응당 더 높은 상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고, 신인상 정도는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놀면 뭐하니?>가 창조한 부캐의 세계가 오히려 누군가에겐 짙은 그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이 든다. <놀면 뭐하니?>는 결국 유재석이 놀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무언가를 계속 도전한다고 하지만 예전 <무한도전>처럼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신체를 학대하거나 고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재석 개인의 능력치가 상승한 탓도 있겠지만 미션의 수위가 <무한도전>에 비해서 많이 낮아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냥 취미생활의 일종 같기도 하다. <무한도전>이 무언가를 치열하게 이루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놀면 뭐하니?>는 말 그대로 ‘놀 바엔 뭐라도 하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무한도전>보다는 다소 가벼운 느낌으로 시청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무한도전>과의 비교는 숙명처럼 계속될 것이다. 13년이란 세월 동안 유재석=무한도전=김태호 PD라는 공식이 생겼고, 똑같은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니 만큼 비교는 어쩔 수 없다. <무한도전>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선 아마도 동일한 세월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과연 문제는 유재석 1인 체제로 그것이 가능할지의 여부다.
유재석은 분명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국내 최고의 방송인이며, 스캔들 하나조차도 허락 안 하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다. 유재석이 연예인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존경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방송계가 썩 달갑지는 않다. 싹쓰리의 음원차트 싹쓸이나, 유산슬의 신인상 수상이 내게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놀면 뭐하니?>를 응원한다. 유재석을 응원한다. 하지만 내심 유재석을 대체할만한 인재가 어서 나오길 바란다. 바로 그때가 대한민국 예능 방송의 판도가 다시 한번 뒤집힐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