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May 19. 2020

한번 다녀왔습니다

다녀오면 좀 어때요. 그럴 수도 있지

요즘엔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TV를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 같았으면 주말에 약속 잡고 놀러 나가느라 바빴을 텐데, 지금은 주말에도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덕분에 평소엔 보지도 않는 드라마를 다 챙겨보기에 이르렀다. 핫하다는 <부부의 세계> 나 <이태원 클라쓰>가 아니었다. 난 원래 드라마엔 통 관심이 없어서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주위에서 떠들어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는 주말 저녁 8시 KBS2 '7번'에서 하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를 보는 건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8년 만이다.


처음부터 애청자는 아니었다. 엄마가 즐겨 보는 것을 지나가며 힐끗힐끗 눈동냥으로 봤을 뿐이다.(엄마는 언제나 이 시간대 드라마의 충성고객이다.) 자리를 잡고 보게 된 데에는 이정은 배우의 역할이 컸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등장을 했는데, 꽤나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 외 안길강 배우와 오대환 배우 같은 영화에서 인상 깊게 본 배우들의 출연이 조금씩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천호진, 이민정, 이상엽, 오윤아 배우들도 개인적으로 극호에 가까운 배우들이라 결국 나는 TV 앞에 가부좌를 틀고 말았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포스터 (출처 http://mylovekbs.kbs.co.kr/)


<한 번 다녀왔습니다> 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드라마는 이혼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는 이혼이 더 이상 흉도 아니오, 크게 흠이랄 것도 없는 세상 아닌가. 지금은 2020년이다. 20년 전에 나왔어도 진부했을 소재인 이혼을 지금 대한민국에서 다루는 건 정말 낡아 보인다. 재밌게 보면서도 소재의 진부함에 대한 떨떠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주인공 가족의 4남매가 전부 이혼을 하게 되면서 부모로서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결국 이러한 특수한 상황이 이 드라마의 기본 출발점인 것이다. 처음부터 보지 못한 나는 몰랐다. 엄마의 중계방송을 통해 드라마의 기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건 가족의 둘째 딸 나희 (이민정 배우)와 남편 규진 (이상엽 배우)의 결혼과 이혼이다. 앞서 세 남매가 모두 이혼을 한 상태에서 나희는 가족들의 기대 속에 규진과 결혼을 하지만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사실을 들은 가족들의 반응, 특히 어머니 (차화연 배우)의 반응은 나희에겐 너무나 가혹하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죄인'으로 규정되고,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부모 등에 칼을 꽂은' 불효자식으로 묘사된다. 규진의 가정도 다르지 않다. 규진의 어머니 (김보연 배우) 도 이혼 소식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규진을 괴롭게 한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무리 상황이 특수하다고 해도 이 드라마가 이혼한 남녀를 묘사하는 방식은 시대를 거슬러도 한참을 거스르고 있다. 4남매가 다 이혼을 한 부모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만은 이혼을 한 당사자는 또 얼마나 부모에게 미안할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말 못 한 심정은 또 어떨까. 하지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억지로 결혼 생활을 이어 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제는 그런 시대다. 이혼이 결코 부모 등에 칼을 꽂는 일이 아니다. 지난 32회 방송에서 결국 나희는 울면서 엄마에게 토하듯 얘기한다. '엄마 생각해서 참고 견디며 살아보려 했는데, 내가 외로워서,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살겠다고. 그래서 이혼했다고.' (100%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 예고편 캡처 화면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는 건 나희의 어머니나 규진의 어머니 둘 다 자녀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자녀의 성공과 실패에 크게 동요하고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자녀가 일종의 우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니온 이야기로 예를 들어본다.

나희와 규진은 같은 병원에서 일을 하는 의사다. 의사 부부로 한 TV 의학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 된다. 나희와 규진이 유명세를 타며 둘의 어머니들도 덩달아 어깨가 올라간다. 하지만 이혼 사실이 알려지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면서 어머니들은 주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만다. 나희와 규진 또한 이런 어머니가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이처럼 자녀의 흥망에 감정을 소모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겠지만, 그 사랑이 과하거나 모자랐을 때는 자식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가 이혼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넘어서, 또는 이혼이란 소재를 발판 삼아서 부모와 자녀 간의 이러한 심리적 갈등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길 기대해본다. 지난 30회에서 규진이 어머니에게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시라'며 소리치는 장면을 보면 드라마가 내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든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비록 이혼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묘사를 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100회 중 이제 32회가 방영됐을 뿐이다. 아직 반도 안 지난 시점에서 이 드라마가 나쁘다 좋다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다. 이혼이란 소재로 어떻게 괜찮은 가족 드라마가 만들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된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자명한 일이겠지만, 배우들의 매력 하나만으로도 주말 저녁 2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리고 이 가족 드라마 때문에 우리 가족도 실로 오랜만에 매주 주말 저녁을 함께 보내고 있다. 이게 바로 가족 드라마의 미덕이 아닐까.


한 번 다녀오면 뭐 어떠나.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안아줄 가족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 32회의 한 장면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미스터 트롯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